- 맥주 거품에서 이야기 출발
- 정치·경제·문화 등 아우른
- 맛있는 통섭의 사고여행

맥주 광고를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지금 당장 냉장고 문을 열고 한 캔? 기껏해야 '인생, 이 맛이다' 같은 맥주개론서를 넘지 못하는 좁은 생각의 틀에 한숨이 나오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사고(思考) 여행 길잡이'이다. 맥주의 거품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경제학, 진화론, 인구론까지 넓은 사유의 지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 최재천 교수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2012년부터 3년 간 신문에 연재한 칼럼 133편을 모은 이 책은 1000자로 보는 만화경(萬華鏡)이자 맛있는 교양서이다. 비법 양념은 최 교수를 일컬을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통섭(統攝)'. 그의 전공분야인 진화와 생명, 인간과 동물, 환경과 생태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외교, 교육, 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방위적으로 구한 소재가 싱싱한 재료가 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학자로서의 성찰과 생활인으로서의 깨달음을 조화시키는 손맛도 탁월하다.

다시 맥주 이야기로 돌아가자. 저자는 몰트와 홉의 비율에 따라 좌우되는 맥주의 거품은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 거품은 환영받지 못한다. 실업의 원인으로 일자리에 비해 대학 졸업자가 너무 많이 배출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 대표적인 시장 경제 논리이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진화에서 거품은 기본이라고 본다. 알에서 성체로 자라는 개체는 1%도 되지 않는 해양 무척추동물처럼 자연은 지극히 낭비적인 삶의 방식을 택해 적응하고 진화했다는 것. 따라서 높은 대학진학률이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글쟁이'로서의 미덕은 마지막까지 잊지 않는 유머감각으로 여운을 남기는 것. 표제작 '거품예찬'에서 "그런데 왜 자연계의 거품은 인정하면서 경제계에서는 윤허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해도 거품 빠진 맥주는 정말 못 마신다"고 너스레를 떨며 글을 맺는 식이다. 소탈한 자기 고백도 에세이스트의 빼놓을 수 없는 장기다. "김연아 선수, 나는 이 세상천지에서 당신을 가장 존경합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신춘문예 열병을 앓던 문학청년 시절 만난 솔제니친에 대한 애정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생각의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일례로 국립생태원장이기도 한 저자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 "모호함과 불안함으로 창조의 불씨를 지피리라"고 긍정하는 대목에서 통섭적 사고가 갖는 비약성을 한계로 느끼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다양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그가 건넨 잔을 넘어설 때 비로소 진정한 사고의 성장이 이뤄지는 법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넘쳐야 흐른다'처럼 말이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