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위)과 한국기업 유한킴벌리의 사무실 모습. 기존의 그리드(격자) 구조를 파괴하고 혁신적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국제신문DB·세종서적 제공

- 오랜 세월 지배와 통제 위해
- 사용돼 온 그리드 구조
- 글로벌 IT기업 주도로 탈피

- '미래 경영은 공간 경영이다'
- 애플 세계 최대 사옥 짓고
- 페이스북 2800명 한 사무실 써

IBM과 미 국방성인 펜타곤은 절대권력을 상징한다. IBM은 표준화된 문화와 글로벌 업무체계의 상징물이었다. 1980년대 컴퓨터 업계의 독보적인 1위 IBM은 'Global'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전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펜타곤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세워졌다. 바닥 면적 기준으로 전 세계 최대 규모인 이 건물은 세계 최대 군사 강국 미국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이 절대권력도 이제 애플에 내줘야 한다. 애플은 이미 1984년 슈퍼볼 경기 광고를 통해 '빅브라더' IBM을 해머로 깨버렸고 올해 무려 6조 원을 들여 완공할 애플 사옥 '스페이스십'(26만 ㎡)은 바닥 면적으로 볼 때 지구 상에서 가장 큰 건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래 경영은 공간 경영이다'라는 다소 이색적인 슬로건을 내걸며 공간(건축)과 경영을 접목했다. 최근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하락하며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상황에서 애플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스페이스십을 건설하고 있는 것도 기업 생존이 공간 경영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페이스십이 완공되면 애플 직원들은 정해진 자리에서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면서 일해야 하는 등 엄청난 업무 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저자는 관리와 통제의 대명사였던 '그리드'를 파괴해야만 기업들이 미래 시장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애플 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드(grid)의 사전적 의미는 격자, 즉 바둑판의 눈금 같은 것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피지배 계급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또 사물이나 현상을 관리하기 위해 그리드 구조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 테일러리즘(Taylorism )과 포디즘(Fordism)이 인간 동작 등을 분석해 그리드를 만들었고, 그 결과 조직에 성과를 가져왔으나 지금은 그 짜인 틀이 오히려 인간 본성과 조직 성과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드의 수명이 다하면서 기업들이 탈그리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스페이스십과 마크 로스코의 로스코 채플, 프랭크 게리가 만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페이스북, 이탈리아 밀라노의 이탈리와 텐코르소코모, 미국 뉴욕 동강의 혁신과 서울 성수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가 그것이다.

누구보다 변화에 민감한 세계적인 선도기업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는 공간의 구조를 혁신함으로써 그 해법을 찾았다. GAFA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에 있는 첨단 ICT 기업에 독특한 업무 공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은 2800여 명의 직원이 하나로 뻥 뚫린 초대형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구글과 아마존도 각기 다른 형태로 그리드를 파괴한 건물을 신축 중이다. 수평적 조직 운영과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등은 이들 기업의 공통된 특성이다.

상업공간도 이제는 쇼핑이 아니라 몰링(malling)으로 변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이탈리와 텐코르스코모에서 카페와 식당, 문화와 엔터테이먼트가 결합된 그로서런트(Groce-rant=Grocery+Restaurant) 개념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몰링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대형 복합 쇼핑몰의 강력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기업이 관리와 통제의 원칙을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과 다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유한킴벌리는 2011년 그리드를 파괴하고 새로운 경영방법인 '스마트워크'를 도입하면서 행복한 일터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저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때로는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며 "그리드를 파괴해야만 위기를 극복하고 조직 문화를 혁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