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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준의 新어부사시사 <3> 청어 이야기(상)

고려의 미식가, 청어를 노래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2-05 19:34:0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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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문신이자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초상화.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성균관의 학칙을 개정하고 성리학을 강론하는 등 성균관의 중흥과 신진사대부의 정치적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먹는 것을 밝히기로도 유명한 인물인데, 그의 청어 사랑은 여러편의 시를 남길 정도로 유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1980년대 자취를 감춘 청어
- 근래들어 다시 모습 드러내
- 수백년 전 조선시대에도
- '신출귀몰한 어류' 기록 남아

- 이색·김려·김정희·이덕무…
- 많은 선비들이 청어맛에 빠져
- '선비 살찌우는 물고기' 별명도


하루하루 살아갈 때 없어선 안 될 달력이요

맛없는 아침밥 입맛을 돋워 주는 청어로다

달력을 보면 길일 흉일 훤히 눈에 들어오고

청어를 먹으면 내장에 원기가 충만해지리라


이맘때면 애주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안주가 있다.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자태를 한껏 뽐내는 과메기가 바로 그것. 요즘은 굳이 경북 영덕, 포항을 직접 찾지 않고서도 가까운 마트나 홈쇼핑을 통해서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메기는 꽁치를 말린 것. 하지만 과메기의 실제 주인공은 청어다. 한때 우리 바다를 누볐지만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춰버려 꽁치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던 청어. 이제, 녀석이 몇 해 전부터 다시 우리 바다를 찾아와 잃었던 자리를 되찾고 있다. 이번에 만나는 물고기는 실로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반가운 청어다.

■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

문헌상 청어는 고려 말 이색(李穡)이 지은 시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색은 익히 알려졌듯이 고려 말 거유(巨儒)이자, 먹는 것 밝히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 그의 청어 사랑은 여러 편의 시를 남길 정도로 유별났다.



'하루하루 살아갈 때 없어선 안 될 달력이요/ 맛없는 아침밥 입맛을 돋워 주는 청어로다/ 달력을 보면 길일 흉일 훤히 눈에 들어오고/ 청어를 먹으면 내장에 원기가 충만해지리라'



청어는 미식가 이색의 입맛과 허한 속의 원기를 돋우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어느 날 지인이 술을 가지고 찾아오자 그는 청어를 구워 안주로 대접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상당군이 조정에 돌아오던 날/ 동쪽 이웃은 병들어 누웠었네/ 좋은 술은 푸른 거품을 기울이고/ 좋은 안주는 청어를 구웠구려/ 부침개는 끊어 놓은 기름 같고요/ 쟁반엔 기록할 만한 감미가 쌓였네/ 해장술로 거나하게 취하고 나니/ 흥취 있어 그윽한 삶이 쾌족하구나'



이색도 '좋은 안주'라고 표현했듯이 청어는 역시 구웠을 때가 제맛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저술한 김려(金糲)도 "청어는 맛이 달고 연하며, 구워먹으면 아주 맛있으니 정말로 진귀한 어종이다"고 그 맛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시대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비로는 김정희(金正喜)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자 아내에게 요청해 집의 음식을 가져와 먹었을 정도였으니. 그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 것을 보면 청어 구이는 그에게도 역시나 특별한 맛이었던가 보다.



'바닷배에 실린 청어 온 성에 가득하니/ 살구꽃 봄비 속에 팔이꾼 외는 소리/ 구워 노니 해마다 먹던 맛 그대로인데/ 새 철이라 눈이 끌려 특별히 정이 가네'



청어는 쌀과 함께 끓여 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청어 사랑이 남달랐던 이색은 청어죽에 대해서도 시를 남겼다.



'쌀 한 말에 청어가 스무 마리 남짓인데/ 끓여오매 흰 주발이 채소 쟁반을 비추네/ 인간의 맛 좋은 물건들이 응당 많으리라/ 산더미 같은 흰 물결이 하늘을 치는 곳엔'



요즘은 청어죽이 낯선 음식이지만 17세기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보면 당시 바닷가 사람들은 식사대용으로 청어죽을 끓여 먹고 있었다. 곡식이 부족한 시대였으니 기름진 청어로 끓인 죽은 그야말로 '영양의 보고(寶庫)'였을 것이다. 청어는 '비웃'으로도 불리는데, '비유어(肥儒魚)'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많은 선비들이 청어 맛에 빠져 있었으니 '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신출귀몰 청어

   
조선시대에 청어는 삼면의 바다에서 모두 흔했다. 15세기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를 보면 청어는 은구어(銀口魚), 대구어(大口魚)에 이어 흔하게 등장하는 물고기였다. 또 이후 각종 사료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청어가 났음이 확인된다. 특히, 경상도의 통영·흥해·연일·장기·울산, 전라도의 위도, 황해도의 해주 등은 청어 산지로 유명했다. 부산 바다에서도 청어가 많이 잡혔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년)나 '내영지(萊營誌)'(1850년)에도 청어가 토산물의 하나로 당당히 올라 있다.

청어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는 정약전(丁若銓)이 '자산어보(慈山魚譜)'에서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청어가 정월이 되면 알을 낳기 위해 떼를 지어 회유해 오는데, 이때 수억 마리나 대열을 이루어 오므로 바다를 덮을 지경이다"고 했다. 서유구(徐有榘)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황해도에서는 여름에 청어가 몰려오는데, 사방 수 백리의 바다를 덮을 정도로 밀려왔으며, 너무 많이 잡아서 먹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고 했다. 불과 40~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 영덕의 해안에는 자고 일어나면 청어가 나뒹굴어 줍기만 해도 되었다고 하니 이 말들이 지나친 과장은 아닌 듯하다.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우리 바다는 청어로 넘쳐났다. 하지만 청어의 들고 남이 일정하지는 않았다. 청어는 어떤 때는 많이 나고, 또 어떤 때는 자취를 감추고 나지 않았던 것이다. 유성룡(柳成龍)은 '징비록(懲毖錄)'에서 "동해의 물고기가 서해에서 나고 점차 한강까지 이르렀으며, 원래 해주에서 나던 청어가 근 10여 년 동안이나 전혀 나지 않고 요해(遼海)에 이동하여 나니 요동사람이 이를 신어(新魚)라고 일컬었다"고 했다. 이수광(李睟光)도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봄철에 서남해에서 항상 다산하던 청어가 1570년 이후부터 전혀 산출되지 않는다"고 했다. 1603년에는 영호남에서 모두 청어가 많이 잡혔지만 1611년 무렵에는 전혀 나지 않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기도 했다. 이렇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청어의 신출귀몰한 모습을 정약전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는 "건륭(乾隆) 경오(庚午, 1750년) 후 10여 년 동안은 풍어였으나 중도에 뜸해졌다가 다시 가경(嘉慶) 임술년(壬戌年, 1802년)에 대풍어였으며, 을축년(乙丑年, 1805년) 후에는 또 쇠퇴하는 성쇠를 거듭했다"고 했다.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청어가 근래 들어 또 다시 나는 것도 이런 신출귀몰함 때문이리라.

   
청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수온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새 같이 온난화가 진행되어 수온이 상승하는 시기에도 청어가 다시 나고 있는 것을 보면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대체 청어가 신출귀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어는 정말로 미스터리한 녀석이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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