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MBC 쇼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도입부를 잠시 보았다. '쿵푸 팬더3'의 홍보를 위해 내한한 미국 유명 배우 잭 블랙이 출연해 무한도전의 멤버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나는 이내 채널을 돌렸거나 껐던 것 같다. 최근 무한도전은 느슨하고 둔탁한 편이다. 저래도 되나, 하는 아찔함이 예전만 못하거나 실종됐다. 이 프로그램 특유의 진짜로 정신 나간 '돌+아이'들의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무한도전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잭 블랙이 때마침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흥미로웠다. 다름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는 날로부터 2년하고 하루 전인 2014년 2월 2일에 48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미국의 유명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을 그가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잭 블랙과 호프만이 헷갈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른 사람인데 젊은 시절 그들은 왜 서로 닮아 보였던 것일까. 두 사람이 나이도 비슷하고(잭 블랙이 69년생, 호프만이 67년생이다), 풍채도 닮았고,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도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신종 '돌+아이'들처럼 보였다. 당시의 나는 스티븐 프리어즈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의 잭 블랙을, 조엘 슈마허의 '플로리스'에서의 호프만을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흐르고 나니 둘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잭 블랙은 지속적으로 B급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더 건전해진다는 느낌을 주면서 사무적으로만 혹은 생업으로서만 '돌+아이' 캐릭터를 이행한다는 인상을 전했다. 반면 호프만은 갈수록 모종의 미치광이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불법적이고 퇴폐적이며 은밀한 치명성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마스터' '다우트' '머니볼' 등에서 그랬다.
호프만의 사인은 마약 과다 복용이었다. 맞다. 말할 필요도 없이 마약은 나쁜 짓이고 위험한 짓이다. 하지만 '마스터'에서 호프만의 소름 끼치는 그 연기는 과연 제정신에서 나온 것일지 의심스럽다. '다우트'에서의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그 난해한 미소가, '머니볼'에서의 그 짧지만 농밀한 호흡과 침묵이 과연 제정신에서 나온 것일지 의심스럽다. 마약과 같은 불법적 광란만이 예술가의 진정한 기본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에서 비껴난 정신 나간 비정상이 예술가의 기본인 건 맞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망가져야만 한다.
치명성을 끌어안았다는 느낌을 주던 사람의 죽음이라 그랬을까. 호프만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무언가 무섭고 은밀한 활동의 힘이 더욱 확장되려는 순간에 그보다 더 억센 힘에 의해 억지로 부당하게 정지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치명적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을, 목숨이 위협당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삶의 상태까지 접근해 가는 것에의 매혹이라고 본다면, 우리에게 그 치명적인 힘을 전했던 사람이 결국 자신이 매혹되었던 그 힘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사건이라 그의 죽음은 더욱 충격이었던 것 같다. 배우의 사후 2년이란, 어느 모로 보나 추모사를 작성하기에는 애매한 시점이다. 그래서 어디에서도 호프만에 관한 추모를 볼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라도 그의 치명성과 비정상을 두서없이 잠시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었다.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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