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은 독일 출신 유대계 지식인으로,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이다. 그가 남긴 글 중에서도 대중예술과 현대매체에 관한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잘 알려진 만큼 약간의 오해 소지가 있다.
벤야민이 살았던 1900년대 초반은 사진과 영화의 발명으로 전통적인 예술세계가 위기감에 휩싸였던 시대이다. 벤야민은 이 시대를 '기술복제의 시대'로 정의한다. 그리고 '아우라(AURA)의 몰락'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작품을 접하는 대중의 지각 구조가 변화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때 등장하는 '아우라'는 사전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독특한 기운'이라고 정의된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는 권위와 종교적인 기능을 말한다. 벤야민이 정의한 기술복제 시대 이전의 예술작품들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고, 고고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숭배해야 할 대상이며,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없는 유일무이한 대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이었다.
하지만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는 기술복제시대에 이르러 사라지게 된다. 복제 기술의 발달로 일회성과 유일성을 포함하는 '원본성'이 파괴되면서 대중은 상대적으로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벤야민은 이 기회를 아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기술복제시대 이전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었던 반면 이후의 기회는 대중들에게 '진보적 미감'을 가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숭배의 대상이었던 예술작품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대중은 비판적인 발언을 하게 되고 이는 사회참여로 이어지며 대중들의 모더니티 획득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로 인한 예술 가치의 몰락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넘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보적 미감'을 긍정하고 있다. 이 긍정은 기술매체의 미래를 내다보며 대중과 사회의 미래까지 확장하는 벤야민의 사유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벤야민은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오락의 대상인 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분산적이고 촉각적인 지각방식을 훈련하게 해주는 매체라고 보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작품이 정적인 반면 영화는 다양한 화면 기법과 중첩된 이미지, 속도감 있는 화면 전개를 포함한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동적인 매체이다.
이때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지각 방식은 분산적이고 촉각적이다. 정적인 예술작품을 경건한 태도로 숭배했던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마음을 분산시켜 오락의 대상으로 여기며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예술작품과 하나가 되어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없는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대중이 아닌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대중이 된다는 뜻이다.
벤야민은 모든 대중이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며 비평가적 삶을 살기를 바랬던 것일까. 기술의 진보를 통해 대중과 사회도 진보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일까. 벤야민의 바람과 예견은 어쩌면 크게 현재와 비켜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더 이상 '진보적 미감'을 기르기 위한 훈련의 도구가 아니다. 영화는 자본을 무기로 대중을 선동하고 무기력하게 만들며 첨예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예술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모든 이들에게 영화감독이 될 기회를 주었지만 대중들의 손에 쥐어진 아이폰은 권력이 설정하는 의제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는데 최적화된 장치가 되었다.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1934)에 등장하는 다양한 촬영 기법과 편집술이 오늘날 거대 규모의 상업영화에 서슴없이 등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이 영화들을 손바닥 안에서 쉽게 들여다보는 이 평범한 풍경을, 만약 벤야민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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