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민철 기자

"최계락 선생님이 주시는 상이니 더더욱 기쁩니다. 아마 다른 분이 주신 상이라면 이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조성래(56) 시인은 "시가 있어야 할 자리, 시 쓰는 우리 시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관해 진정으로 반성하도록 최계락 시인은 이끈다. 경이롭도록 순수한 선생의 시는 내 안의 망가진 부분을 원상복구해주고 정화해준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최근 그가 펴낸 시집 '천 년 시간 저 쪽의 도화원'은 문단이 큰 관심을 보였다. 문예지 '신생'의 가을호는 조성래 시인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조 시인은 1년에 평균 10여 편 시를 발표하는 편인데, 올해는 25편이나 내놓았다. 그런 흐름을 이어 '천 년 시간 저 쪽의 도화원'이 최계락문학상을 타자 그는 "최근 몇 년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지나왔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좋은 일이 많다"고 말했다.

"생명감, 생명현상이라고 할까요?" 요즘 시를 쓸 때 관심이 많이 가는 대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새벽에 걸어서 학교로 가는데(그는 학산여고 교사이다) 누군가 고요히 나를 보는 느낌이 들었지요." 주인공은 동백꽃에 앉은 직박구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은 참 황홀했지요.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직박구리가 포르릉 날아가 지리산 연곡사 동부도 속으로 들어가버릴 것만 같아서 흐뭇하게 돌아섰지요." 그렇게 탄생한 시가 '점등'이다. 오랜 사유와 기다림이 번쩍하고 지나가는 황홀한 순간과 만나야 나오는 시이다.

시에서 흐뭇하게 물이 오른 생명 기운이 마침맞는 찰나를 만나는 장면이 늘어나는 데 대해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아서 운도 따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 속에는 삶이 형상화되어 있어야 하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1984년 '지평'으로 등단한 직후 군대에 가 시 작업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1989년 '실천문학'으로 다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점등 /조성래

수상작 '천 년 시간 저쪽의 도화원'

이른 아침 학교 언덕길

고요한 시선 하나 나의 내면 엿본다

고개 돌려 숲속 관찰하니 직박구리 한 마리

바로 지척에서 나를 바라본다

엄마 젖에 매달린 젖먹이마냥 동백꽃에 매달려

말갛게 나를 바라본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제 아빠 대하듯 내 눈에 제 눈 맞춘다

순간, 내 망막이 그놈의 눈 안으로 빨려 들어가

환하게 점등되는 걸 느낀다 황홀하게

천 년 시간 저쪽의 도화원에 가 닿는 걸 느낀다

하, 얘 좀 봐? 나는 직박구리와 눈 맞추는 일이

가슴 떨려 못 견딜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오래 지속하면 어느 찰나 저놈이 지리산 연곡사

동부도 속으로 날아가 버릴까 얼른

눈길 거둔다 그리고는 가슴 뿌듯하게

오늘하루 나는 직박구리의 아빠야, 자랑해대며

아이들 가르칠 일을 즐겨 구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