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군산항에서 쌀이 일본으로 출하되고 있는 장면. 당시 군산은 일본에 호남쌀을 공급하는 수탈기지였다. 글항아리 제공

- "너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가"
- 녹두장군 사진 속 눈빛에 압도
- 고대 유적 못지않은 보배 소개

익히 알려진 흑백 사진 한 장. 1895년 2월 27일 압송되는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을 찍은 것이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사와 함께 녹두장군을 찾았던 한 신문기자는 녹두장군의 '타는 눈빛'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병을 몰아내고 군왕 곁을 깨끗이 한 뒤 우리 자신들은 바로 시골로 돌아가 상직(常職)인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던 동학농민군 녹두장군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문화유산 일번지(글항아리)의 저자 부산박물관(부산근대역사관)의 전시 기획 담당 유승훈 학예연구사는 사진 속 녹두장군의 눈빛에 압도됐다고 털어놓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세한 내용은 이 책 '정읍의 동학농민혁명유적'편에 보인다.

'밤에는 역사 속 민중의 풍속을 연구하는 역사민속학자'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밝혔듯 '미술사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게감이 절대 떨어지진 않는다. 2013년 부산 문화에 관해 쓴 '부산은 넓다'가 부산의 10대 히트 상품으로 선정됐다. 2012년에는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이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 교양부문)을 받았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민속'(2009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우리 놀이의 문화사'(2009),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2006) 등 그가 쓴 책은 무척 많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유산에서 봤던 길을 안내해주고, 문화유산으로부터 들은 삶의 귀감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특히 청춘들에…. 그래서 책 부제는 '청춘을 위한 문화유산 답사기'다. 또 저자는 "근대 건축물 답사에서도 고대 유적 못지않게 보배와 같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일번지'에 대구 군산의 근대 문화유산들을 많이 다룬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춘을 위한' 군산의 근대 문화유산을 만나러 가보자. 군산은 일제가 호남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던 '쌀의 도시'. 그 결과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곳곳에 넘쳐난다. 저자는 1930년대 군산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쓴 채만식의 소설 '탁류'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채만식이 보기에 일제강점기 군산 사람들의 인생은 탁류와 같다. 탁류같이 흐르는 삶은 결코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추하지도 않다"며 군산의 일제강점기 문화유산도 예사로이 흐르는 탁류처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이를 통해 째보선창 근처 일제가 세운 일명 '뜬다리'인 부잔교, 군산세관과 조선은행 군산지점, '침탈과 참회가 공존하는' 동국사, 월명동 신흥동 일대 일본식 가옥들에 관한 아픈 역사를 들려준다.

'부산의 임진왜란'을 말하는 기록화 '부산진순절도'(보물 제391호)와 '동래부순절도'(보물 제392호) 대목에서는 가슴이 미어진다. 저자는 두 순절도가 '말하는 것'(충절)과 '말하지 않는 것'(임진왜란의 그늘)에 주목하고, '언젠가는 말하는 유물'에 대해서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