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해 대성동 고분군 29호분에서 나온 북방계 동복, 김해 양동리 고분군 270호분 출토 가슴 장신구, 대성동 고분군 29호분의 출토 상태. 29호분은 묘광 길이만 10m에 달하는 금관가야 최초의 왕묘로 추정된다. 국제신문DB

- 대성동·송학동 고분군 눈길
- 가야인 특징 단초 예안리도

1991년 3월 25일이란 날짜가 선명한 흑백 사진 한 장. 김해 대성동 고분군 29호분에서 나온 동복(기마민족이 갖고 다니던 이동식 밥솥)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다. '기마민족 정복 왕조설' 주창자인 일본의 대표적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1906~2002) 도쿄대 명예교수가 신경철 교수(당시 경성대)와 동복을 놓고 토론하는 장면이다. 동복을 한참 동안 살펴보던 에가미 선생은 이렇게 혼잣말처럼 뇌였다고 한다. "이게 내가 평생 갈구하던 그것이다. 마침내 미싱 링크(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 나의 학설은 드디어 완벽하게 증명됐다."

에가미 선생이 흥분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는 1948년 한 좌담회에서 '북방 부여계 기마민족이 마한과 가야를 거쳐 일본 열도에 정복 왕조를 건설했다'는 기마민족설을 내놓아 황국사관에 젖어있던 일본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그동안 기마민족이 김해 지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유물을 찾지 못해 애가 탔다. 대성동 고분군 29호분에서 나온 동복이 에가미 선생의 갈증을 한 번에 해결했다.

이러한 고고 유적 발굴 뒷이야기는 '조해훈의 발굴 유적순례'(푸른별)에 보인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 고고학 대표 유적 발굴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인 이 책은 동아대 다우미디어센터에서 근무하는 조해훈 시인이 최근 펴냈다. 시인이 국제신문 문화전문기자로 있을 무렵인 2006년 7월 7일 자부터 2007년 1월 19일 자까지 매주 한 차례 지면에 실었던 내용을 현시점에 맞게 보완했다.

이 책에는 대성동 고분군을 비롯해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인 영도 동삼동 패총과 통영 연대도 패총, 금동관 출토 등으로 경주 지역 고분과 닮았으나, 횡구식석실분이어서 묘제는 전혀 다른 양산 부부총,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다라국 등의 성격을 밝혀주는 유적들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신경철 교수의 말처럼 '공주 무령왕릉, 경주 황남대총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발굴로 꼽히는 대성동고분군'은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한다. 사적 제266호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적인데도 동삼동 패총 유물이 한때 떠돌이 신세였다는 뒷얘기는 씁쓸하다. 더욱이 발굴한 지 30여 년만인 2005년 7월에야 동삼동 패총의 발굴 보고서가 나왔다는 사연 역시 기막히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 대해서는 기원전 2세기 삼한시대 전기부터 금관가야가 쇠퇴하는 5세기 삼국시대까지 가야 묘제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보는 '전시장'으로 소개했다. 인골이 100기 넘게 나와 가야인의 형질적 특징을 밝히는 단초를 제공한 김해 예안리 고분군 발굴 조사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 전방후원분과 무관' 내용은 저자가 2000년 2월 23일 자에 특종기사로 보도한 것이다. 당시 기사를 보고 한·일 양국 고고학자와 고대사학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동아대의 조사 결과 송학동 고분군의 1호분은 '일본 전방후원분에 영향을 준 전방후원분'이 아니라 3기의 대형 둥근 무덤이 중복으로 배치된,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의 소가야 수장급 무덤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