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현대사회를 읽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애니메이션(만화영화)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수업을 할 때마다 신이 난다. 일요일 오전이면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 눈이 번쩍 떠졌던 경험, 평일 오후 5시30분이면 '로봇 태권브이'를 외치며 TV 앞에 모여든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 그런 경험이 있고, 또 그들은 만화영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드러내놓고 관람하지 못하고, 공부라는 핑계를 대며 만화영화를 본다는 고백을 종종 한다.

대개 우리는 20살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란 어린이나 보는 유치한 만화 따위는 보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뜬금없지만 상상해보자. 40살 전후의 중후한 남성이 지하철에서 낄낄대며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를 보며 아직 철이 덜 든, 혹은 덕후(오타쿠)가 아닐까 하고 경계의 눈빛을 보낼 것이다. 만화는 공적 영역에서는 볼 수 없는, 유치하고 폭력적 성향이 짙은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타인의 시선을 피해 몰래 관람한다.

만화영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는 책이 바로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이다. 이 책은 만화야말로 현대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임을 주장한다. 글을 쓴 필자들은 만화영화에서 발생하는 재미, 감동, 교훈이라는 일차원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관점으로 만화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만화영화가 아이들만 보는 유치한 장르가 아니라 '새로운 읽기'가 가능한 방식임을 깨닫게 한다.

제목만 들어도 설레는 '은하철도 999'는 기계 몸을 갖고 싶었던 주인공 '철이'를 통해 인간과 기계가 무엇인지 성찰케 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관람했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오시카'와 '원령공주', 다카하타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인간과 환경이라는 대립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을 돌아보게 한다. 수많은 오타쿠를 양산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경우 인간의 정체성을 생성과 변이의 관점 등으로 살펴보며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는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봤던 만화영화가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빠르게 읽고, 시대를 앞질러가는 매체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