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흐자드의 '유수프의 유혹'(1488). 비흐자드는 페르시아 세밀화의 대가다.

- 화가 비흐자드는
- 불가능을 꿈꾼 모양이다
- 이야기의 흐름을 담으려고
- 화가의 시선은
- 유수프가 거치는 문들과 계단의
- 경로를 따라흐른다

- 유혹을 뿌리치는 결정적 순간
- 유수프의 얼굴에는
- 어떤 표정이 담겨 있었을까
- 어떠했기에 남김없이
- 지워져야 했을까

계단을 오르고 회랑을 지나고 마지막 방에 이르기까지, 문을 열면 다시 문이다. 하나의 문을 지나가는 순간마다 하나의 공간이 새롭게 재조립되는 것일까? 부분과 부분들이 이어지면서 끊어지고, 끊어지면서 이어진다. 그림 속의 건축물은 수많은 다른 시점들로 축조되었다. 그리하여 부분 부분은 사실적이지만 전체로는 환상적인 미궁이다. 이 묘한 건축물을 그린 자는 페르시아 세밀화의 대가 중의 대가, 오직 그만이 자신의 그림에 서명할 수 있었던 위대한 장인 카말 알 딘 비흐자드(1450∼1535)이다. 비흐자드는 헤라트(아프가니스탄 지역)의 한 궁정에서 조용히 그림만을 그렸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이후 이슬람 세밀화는 오랫동안 그의 모방에 불과했다.

■7개의 방에서 탈출한 유수프

이 묘한 건축물, 일곱 개의 문에 얽힌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수프(요셉)와 줄라이하다. 이야기는 '코란'에 실려 있다. 사디, 자미 같은 심오한 시인들이 '코란'의 이야기에 살과 피를 부여했다. 여주인 줄라이하는 하인 유수프를 사내로 갈망했다. 그녀는 방이 일곱 개가 되는 아름다운 궁전을 짓고 방마다 현란한 빛깔과 향기로 가득 채웠다. 자미는 이 궁전을 "인간의 욕망만큼 거대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줄라이하는 유수프에게 방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방문을 잠갔다. 마지막 일곱 번째 방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욕정은 정체를 드러냈다. 신의 충실한 종인 유수프는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유수프가 앞에 서면 잠겼던 문들이 저절로 열렸다. 인샬라.

비흐자드는 불가능을 꿈꾸었던 모양이다. 유수프가 유혹을 뿌리치는 극적인 순간과 이야기의 흐름을 한 화면에 담으려 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담기 위해서 화가의 시선은 궁전 외부와 내부를 드나들면서 유수프와 줄라이하가 거쳐 가는 문들과 계단의 경로를 따라서 흐른다. 그리고 구조물 군데군데에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구들을 써넣음으로써 이야기의 경과(시간)와 그림의 공간이 만나도록 하였다. 특히 사선의 계단은 수직과 수평의 정적 구도에 동적인 흐름을 부여하는데, 화가는 그 계단의 경사와 폭에 맞추어서 시구를 배치했다. 그리하여 계단의 동선을 따라 이야기도 함께 흐른다.

한 사내를 유혹하기 위해 여인이 몰래 잠근 7개의 문에 허무한 열정과 신성한 침묵이 서린다. 섬세하게 그려진 청록색의 장식들은 물질세계(줄라이하의 세계)의 덧없는 화려함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덧없음으로 하여 더욱 치열해 지는 것일까. 장식은 주로 육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변형들과 무한히 생성하면서 얽히는 식물의 줄기(당초)와 꽃의 패턴이다. 화가가 장식에 그의 열정과 기예를 집중시킬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서사의 흐름을 벗어난다. 흐름을 벗어난 곳에서, 덧없는 연속무늬는 무한으로 통하는 연속무늬가 될지도 모른다. 화가가 여인의 욕망에 입힌 장식은 실로 신의 무한함과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장인들이 일생을 바쳐 사원에 새기던 그 찬란한 장식 문양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욕망과 신성이 서로 어깨를 스치며 장식 문양들 사이를 신비롭게 떠돈다.

일곱 번째의 문을 열고 들어선 마지막 방은 결정적 순간을 드러낸다. 비흐자드는 그 극적인 순간만큼이나 극적인 시공간을 건축한다. 마지막 방은 유일하게 발코니가 있는 방이다. 발코니는 내실의 내밀함과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그리하여 발코니에서 여자들은 운명의 사내와 눈을 마주치곤 하지 않던가, 로미오의 소야곡을 듣는 줄리엣처럼 말이다. 이 발코니를 화가는 밑에서 올려다보는 외부의 시선으로 그렸다. 그러자 발코니는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 벼랑의 이미지가 된다. 돌아서며 사내를 향해 손을 뻗치는 여인의 간절함은 이 벼랑으로 인해 극화된다. 발코니가 올려다보는 시점이라면, 방 안의 장면은 수평적 시점으로, 방바닥의 카펫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졌다. 일곱 번째 방은 외부와 내부, 그리고 세 개의 다른 시점이 모여서 만든 결정적 순간의 기이한 시공이다.

■지워진 유수프의 얼굴

그런데 결정적 순간,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는 유수프의 모습은 사뭇 당혹스럽다. 우선 머리에 불꽃으로 된 후광이다. 이런 후광은 유럽의 성화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 세밀화를 꼼꼼히 살펴본다면 신의 계시를 받거나 성령이 임한 성자에게 이런 불꽃 후광이 그려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유수프의 신은 신성한 불과 깊은 연관이 있음이 틀림없다. 불을 숭배했던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알라딘에 의해 불러내어진 램프 요정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소녀시대의 노래에도 나오는 그 '지니'. 아랍 권에서는 정령의 존재를 지니, 혹은 진(Djinn)이라고 하는데, 지니는 불꽃으로 만들어졌다.

진정 당혹스러운 점은 유수프의 얼굴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금지한 이슬람의 율법 때문에 이 걸작을 소유했을 어떤 소장자가 남몰래 지워버린 것일까? 궁금하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는 유수프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담겨 있었을까? 코란에서도 "그녀가 그에게 욕정을 품었으매 그도 주님의 예증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으리라"(유수프 장) 하였다. 욕망과 신성은 서로 교차하면서 우리 얼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것일까? 만약 당신이 이 여백에 다시 유수프의 얼굴을 그린다면 어떤 표정을 그릴 것인가? 종교적 도그마의 폭력 때문이든 지극히 사적인 우연 때문이든 간에 어쨌든 유수프의 얼굴은 지워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고뇌는 이제 여백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 여백에 인간에서 신까지 수천의 표정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코란'에서 한 인물 이야기로 한 장을 이룬 것은 '유수프 장'이 유일하다. 유수프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담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가 살아 나와야 한다. 신화와 민담에서 그 죽음의 세계는 동굴이나 지하세계, 미로, 물고기 뱃속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자궁의 다양한 상징이다. 자궁이야말로 생명 이전의 혼돈을 품고 있는 죽음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곳이다. 모든 죽음-재생은 자궁에서 일어난다.

'코란'에서는 신이 하늘과 땅을 7층으로 창조했다고 한다. 7개 방으로 된 줄라이하의 궁전은 이러한 우주적 상징성을 담고 있는 여자의 미궁이다. 그곳은 영웅 유수프가 통과의례를 치러야 하는 신화적 자궁인 것이다. 그곳은 쑥과 마늘로 견디는 웅녀의 동굴이며, 아리아드네의 실을 잡고 들어가는 테세우스의 미궁이고, 요나를 삼킨 물고기의 뱃속이다. 그리고 한 화가가 위대한 대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리라.

세밀화의 영웅, 비흐자드는 만년에 터키석과 자개로 장식된 황금 바늘로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이 멀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형태와 색채를 초월한 그 아득한 신성의 어둠에 이르게 된다. 위대한 거장의 신비로운 클로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