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서 춤은 황홀하고 매력 넘치는 순간을 맛보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장르다. 하지만 춤 작품을 보고 '참 어렵다'고 느끼는 때도 무척 많다. 춤 작품을 보고 나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결론 아닌 결론에 닿을 때가 상당히 많아서이다.

'이해'해야만 미(美)를 느끼거나 작품과 감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예술에서 작품 내용과 구성에 관한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만나거나 풀지 못한 채 '아름답다' '감동이 크다' '낯설다' '새롭다' '나쁘다'고 판단·소감을 밝히기 어렵다. 혼란스러움이 먼저 오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 연극 뮤지컬 같은 다른 예술이 언어라는 '논리적' 매개체를 어떤 식으로든 기본 요소로 삼는 반면, 춤은 오히려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특징에서 숙명처럼 생긴 양상으로 일단 볼 수 있다.

어쨌든, 춤 예술 현장을 10년 가까이 취재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기사로 쓴다는 것은 언어를 매개로 논리단계를 밟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혼란스러움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춤에 관한 기사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보고 느끼고 묻고 읽으며 현장 기자로서, 최소한의 지표를 잡아보고자 끙끙댔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주제는 무엇인가. 2. 주제는 어떠한가. 3. 주제를 구현하는 표현방식에서 새로움을 강조하는가. 4. 주제를 구현하는 표현방식에서 친숙함을 강조하는가. 5. 새로움을 강조한 표현방식을 주로 쓰면서 미에 관한 기존 인식을 찢거나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가. 6. 친숙함을 강조한 표현방식을 주로 쓰면서 관객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가. 7. 춤을 잘 추는가. 8. 춤의 앙상블은 뛰어난가. 별항. 에너지와 호흡.

이 정도 항목으로 보면 어느 정도는 작품을 짐작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안무자가 표현하려는 주제를 일단 알아야 어떤 식이든 판단과 소감을 추릴 수 있으므로 1번 항목이 출발점. 그 주제(또는 안무의도)가 예술적 또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의미를 지니는지, 행여 반사회적 반인권적이지는 않은지 등도 판단 대상이므로 2번. 새롭고 낯설다 해서 언제나 좋은 접근법인 것도 아니고 친숙한 방식이라고 무작정 '뻔하거나 후진 작품'이란 선입견을 갖는 것도 반대다. 그러므로 3, 4, 5, 6번….

중요한 점은 이 항목이 춤을 직접 추고 짜는 춤 예술가 시선에서 본 게 아니라 순전히 현장기자 또는 '글쟁이' 관점으로 짰다는 것이다. 춤 예술가에게 물어보면 상당수가 "에너지와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1번 항목으로 올린다. 그러나 글쟁이로서는 에너지와 호흡이 무엇인지 지금도 막연하다.

다양한 관점이 뒤섞여 토론하고 비판하는 문화는 장르 발전의 밑거름이다. 영화가 그렇게 컸다. 평론가, 소설가, 시인, 화가, 정신과 전문의, 기자, 교사, 학자, 주부…. 실로 다양한 관점이 한때 영화계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영화예술의 밑둥치가 튼튼해진 적이 있음을 기억한다. 현재 부산 춤 예술의 약점 한가지는 토론이 없고 논리가 적고 말이 막연하다는 데 있다.

춤 예술인의 항목과 잣대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지독하게 구체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