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言)는 살아 있다. 이것은 김애란의 소설 '침묵의 미래'에서 이미 주지된 사실이다. 그녀의 소설에서 인간의 전유물인 언어는 그것을 담지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러나 언어를 발화할 그 어떤 누구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를 발화했던 단 한 사람마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면 언어는 어떻게 될까.

김연수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린 작품에서도 언어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 김애란 소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침묵의 미래'에서 언어는 그 자신이 직접 화자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탐문하고 고민하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언어를 구사했던 단 하나의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 언어의 정령은 언어를 향유할 인간이 사라지면 언어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소수언어박물관이 강대국의 언어수집 차원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감옥이고 언어의 소멸은 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단수이면서 복수, 모든 것의 합인 언어가 소멸과 부재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발하고 재생한다고는 하지만 화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비감을 지울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언어는 살아 있는 실체, 그 자체다. 잠이나 죽음, 이별과 같은 단절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간관계의 구체적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말과 언어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멸과 부활이 아니라 완벽하게 다른 타인들에게로 전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감지된다. 그 희망의 여부는 물론 사람들에 달려 있다.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말과 언어, 이제는 영영 사라진 한 사람의 언어를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는 남겨진 사람들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단초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 이후에 그들을 단순히 회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남겨진 자들은 생전의 그들이 했던 말을 따라 떠난 이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서 터널은 엄마가 죽은 후로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곳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인물들은 몇 번이고 터널을 반복해서 오가는 동안 그 언젠가 엄마가 불렀다는 샹송, '주쌩뚜디피니'를 읊어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는 시늉을 하네'에서 아내를 찾아 나선 아버지,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애견센터의 유리창 앞에서 자폐아인 태호만이 알아차린 기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도 남과 다를 바 없다는 비감, 그럼에도 삶이 서로 겹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이르는 과정이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벚꽃 새해'에서 이미 잠든 아내에게 낮 동안 읽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모습,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이제 영영 만나지 못할 이모의 목소리를 흉내 내 중얼거리는 화자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가 있어 홀로 되뇌는 말들이 외롭고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믿음이 가게 한다. 그래서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서 화자의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각은 관계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부딪힘과 좌절을 매번 감내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