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곤 씨. 그는 아버지가 스테인리스 공장을 운영해 집안 형편은 괜찮았다.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 친구들과 부산 서면에 놀러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아버지는 장남이 갑자기 사라지자 전국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그는 1978년 3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작은아버지, 사촌 형, 큰누나가 형제복지원을 찾은 덕분이었다. 그가 10년간 지옥에서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찾으려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지만, 끝내 아들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80년 열 살이던 하안녕 씨는 경남 산청에서 부산 학장동 오빠 집에 가기 위해 부산진역에 내려 오빠를 기다리던 중 '파출소 아저씨'가 데려다준다는 말에 따라나섰다가 '수용'됐다. 그가 받았던 수용번호는 80-3038.

이향직 씨도 파출소를 통해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진 경우다. 1984년 중학교 1학년 때 평소 자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던 아버지 탓에 가출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직접 그를 부전역전 파출소에 넘겼다. 그는 파출소에 인계된 그 날 밤 형제복지원에 보내졌다.

숫자가 된 사람들은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11명의 이야기를 인권기록활동 저자들(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이 재구성한 것이다. 등록번호, 몸값, 근무 평점 등 '숫자'로 취급된 이들의 구술기록집이다.

이 책은 '만들어진 부랑인'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부랑인'이 있어서 그들을 '형제도 복지도 없는 지옥 그 자체'인 형제복지원이란 수용시설에 격리한 게 아니라, 형제복지원에 보낼 '부랑인'이 필요했던 까닭에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부랑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운영 당시 해마다 20억 원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 액수 기준은 피수용자 '머릿수'였다.

형제복지원은 국가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던 '국가폭력'의 산실이었다. 이 책에서 최승우 씨는 "어른이 돼 주민등록증을 만들려고 하는데 내 주소가 부산 사상구 주례동 산○○(형제복지원 주소)로 돼 있더라. 국가가, 공무원이 협조했으니까 이렇게 되지 않았겠냐"고 절규한다.

그런데도 아직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많은 생존자는 당시 겪었던 지옥 같은 수용시설 생활 탓에 여전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책에서 전하는 생생한 인간 존엄에 대한 11명의 목소리는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 역사의 진실 앞에 오롯이 세우라고 명령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진상 규명이라는 것을 한 번 보고 아픔을 씻고 갔으면 좋겠어요. (…) 또 하나 바라는 게, 시신을 못 찾은 가족들이 있어요. 그 유족들에게 시신이 돌아갔으면 합니다. 부산 영락공원에 묻힌 형제복지원 희생자 중에는 이름이 있는 사람도 있더라고요."(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