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2008)에서 장풍의가 연기한 조조의 모습.

- 여섯 종류의 좋은 신하, 나쁜 신하
- 유향은 '육정'과 '육사'라 불러

- 조조가 세력 키울 수 있었던 것은
- 사람 뽑고 쓰는 능력 탁월했기 때문
- 국력은 인재를 보는 안목서 출발

"벼슬하지 않은 선비가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데도 세상에서는 그를 기리고, 군주는 그런 헛된 명성을 듣고는 그를 예우하는데, 예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익도 뒤따른다.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애쓰는데도 세상에서는 그들을 헐뜯고, 군주는 속된 판단에 가로막혀 그들을 천시하는데, 천시하는 곳에는 반드시 손해가 뒤따른다. 그리하여 사사로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아야 하는 백성에게 명예와 포상이 주어지고, 공적으로 좋은 일을 하여 상을 받아야 하는 선비에게 비방과 손해가 주어지니, 이래서는 나라가 부강해지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다." ― 한비자 '육반(六反)'

■올바른 신하와 간사한 신하의 유형

애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에 대해서는 목판과 대쪽에 잘 쓰여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행해지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그칩니다."

'중용'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공자는 주 왕조를 세운 문왕과 무왕이 상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를 편 데에는 그들이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사람을 얻는 일이 정치에서 가장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려의 성종(成宗)은 유교 이념에 따라 제도를 정비했고 의식을 행했으며, 왕도 정치를 펴려던 군주였다. 그런 성종에게 당시 유학자 김심언(金審言)이 글을 올려 신하의 품행에는 육정(六正)과 육사(六邪)가 있음을 하나하나 밝히고는 이를 관청의 벽에 써 붙여서 경계로 삼게 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김심언이 말한 육정과 육사는 본래 중국 전한(前漢) 때 학자인 유향(劉向·기원전 77∼기원전 6)이 저술한 '설원(說苑)'에 나오는 내용으로, 먼저 육정을 간략하게 서술하면 이렇다.

"첫째는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존망과 득실의 요체를 미리 아는 성신(聖臣)이고, 둘째는 마음을 비우고 뜻을 깨끗이 하며 도에 통하여 임금을 깨우쳐 주는 양신(良臣)이며, 셋째는 몸을 낮추고 겸손하며 부지런히 일하여 사직과 종묘를 편안하게 해주는 충신(忠臣)이고, 넷째는 일의 성패를 미리 간파하여 화근을 뿌리 뽑아 임금에게 근심이 없도록 하는 지신(智臣)이며, 다섯째는 선대의 법을 잘 계승하며 맡은 일에 충실한 정신(貞臣)이고, 여섯째는 국가가 혼란하고 임금의 정치가 도의에 어긋날 때 직언을 하는 직신(直臣)이다."

이런 육정의 신하는 세상에 드물고 얻기 어렵다. 세상에는 육사가 더 많으므로 경계하기 위해서 좀 자세하게 옮긴다.

"첫째, 관직에 안일하고 녹봉을 탐내며 공무에 힘쓰지 않고 세상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눈치나 보는 사람은 구신(具臣)이다. 둘째, 임금이 말한 것은 모두 좋은 말이라 하고 임금이 하는 일은 모두 잘한 일이라 하며 얼굴을 꾸미고 아첨을 일삼아 임금과 좋게 지내는 사람은 유신(諛臣)이다. 셋째,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을 보기 좋게 꾸미며 선인을 투기하고 현인을 질투하며 등용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착한 점만 밝히고 나쁜 점을 숨기며 쫓아내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잘못된 점만 밝히고 좋은 점은 숨기어 임금으로 하여금 상벌을 부당하게 하고 호령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간신(奸臣)이다. 넷째, 지혜는 잘못을 바른 것으로 꾸며댈 만하고 언변은 꺼낸 말을 시행시킬 만하며 안으로 골육붙이를 이간하고 밖으로 조정에 난을 꾸미는 사람은 참신(讒臣)이다. 다섯째, 권세를 독차지하여 경중을 농간하고 패거리를 조성하여 재물을 노리며 왕명을 마음대로 하여 자신의 영화를 도모하는 사람은 적신(賊臣)이다. 여섯째, 임금에게 간사한 태도로 아첨하고 임금을 불의에 빠뜨리며 붕당을 이루어서 임금의 총명을 가리어 흑백과 시비를 구별 못하게 하며 임금의 악을 국내에 퍼뜨리고 이웃 나라에 들리게 하는 사람은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 '설원' 중 '신술(臣術)'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기는 어려우니

그러나 육정과 육사를 가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평가하면 한 개인이나 가문, 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위기를 자초하거나 몰락을 재촉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됐고 또 대부분 사람이 아는 진실이지만, 실제로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환관의 전횡과 외척의 발호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던 후한(後漢)은 이윽고 184년에 머리에 누런 두건을 쓴 농민의 반란을 맞아 후대에 '삼국시대'라 부르는 난세로 접어든다. 이른바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누적된 후한 왕조의 모순을 모조리 드러내자, 각지에서 권세를 쥐며 패거리를 이루고서 호시탐탐 때를 노리던 자들이 덩달아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 난세에 미약한 처지에서 몸을 일으켜 차츰차츰 세력을 확보한 인물이 조조(曹操)다.

조조는 스무 살에 효렴으로 추천되어 낮은 벼슬에서 관직을 시작했다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출세의 기회를 얻었을 뿐이므로, 당시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세력을 떨치던 동탁(董卓)이나 원소(袁紹)에 견주면 "달빛 아래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가 삼국시대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대세를 읽는 능력과 함께 인재를 알아보고 거두어서 쓴 식견과 안목이 크게 작용했다. 난세는 백성이 어디로 가서 누구를 섬겨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때인데, 학식과 재능을 가진 선비들이라 해서 다를 것이 없다. 난세를 평정하려는 호걸이나 영웅은 그런 선비나 백성 가운데서 인재를 알아보고 써야만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잘 파악했던 조조는 일찌감치 인재를 구하려 애썼다. 그런 조조가 발탁한 인물 가운데 법률 체계와 인사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유소(劉邵)가 있다. 유소가 남긴 글에 '인물지(人物志)'가 있다. '인물지'는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그 사람을 알맞게 쓰는 일, 즉 지인(知人)과 용인(用人)에 관해 체계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책이다. 이 책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성현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것 가운데 총명함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총명함이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다. 진실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다면, 수많은 인재가 그 능력에 맞는 자리를 얻게 되어 창조적인 일을 일으켜 숱한 업적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라면서 유소는 이렇게도 말했다.

"어째서 사람을 알아보기가 어렵고도 어렵다고 말하는가? 사람이란 정밀하고도 미묘한 존재라서 신통한 능력을 지닌 자라야 환히 알아볼 수 있고, 그 방법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알아보기가 어렵고도 어렵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은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을 다 갖출 수 없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관찰하고 구분하려 한다."

■제국의 길도 사람에게 달렸다

누구나 사람에 대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관찰하고 구분하려 하지만, 이미 식견이 부족하고 안목이 얕은 까닭에 엉뚱하게 판단하거나 그릇되게 평가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판단과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잘못된 칭송이나 비방이 횡행하게 되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한비가 '육반(六反)'에서 헐뜯어야 함에도 칭송하는, 잘못 평가하고 그릇 평가하는 일들에 대해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공자가 말했듯 정치는 사람에게 달렸다. 이제 그 정치는 국민이 누구를 알아보고 뽑느냐와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치에 나선 자가 어떤 사람이 유능한지를 알아보고 추천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왕정에서 민주정치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관건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나라에서는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쓰는 일을 대체로 쉽게 생각한다. 국회에서 인사 청문회를 해도 매양 비슷한 사람이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천리마처럼 내달리다가 제국의 길 앞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유향이 정의한 '육정(여섯 종류 좋은 신하)'

성신(聖臣) 존망과 득실의 요체를 미리 안다

양신(良臣) 도에 통하여 임금을 깨우쳐 준다

충신(忠臣) 근면·겸손해 사직 종묘를 편히 한다

지신(智臣) 화근 뿌리 뽑아 임금의 근심이 없다

정신(貞臣) 선대의 법을 잘 계승하고 충실하다

직신(直臣) 임금이 도의에 어긋날 때 직언한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