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를 남종화와 북종화로 구분한 명 나라 후기의 문인화가 동기창이 그린 '완련초당도'

- 심산유곡에 은둔한 죽마고우 초당 방문하고 그린 그림
- 옛 화법 두루 수용하되 절제와 단순화로 독창적 회화세계 열어
- 추상적 공간 배치는 당시 유입된 유럽 기하학 영향 받았을 가능성
- 그림 중심을 여백 처리, 마치 그 곳에서 청신한 기운 뿜어나오는 듯

나는 동기창(1555-1636)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설치한 진법 같은 산수 속을 헤매고 있다.

명나라 말기, 미학의 주도권을 장악한 동기창은 회화의 역사를 궁정화원들에 의해 이어져 온 북종화와 문인사대부에 의해 계승된 남종화의 계보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마치 재판관처럼, 그의 정치적 지위와 예술적 카리스마와 박학의 힘으로 엄숙하게 남종화의 미학적 승리를 판결하였다. 그리고 "북종화는 마계(魔界)"라고 선언하였다. 동기창의 이러한 지나친 단호함에는 환관과 같은 궁정세력에 대항하고자 했던 문인계층의 급박한 계급적 이해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1989년 북경에서 13억 원에 경매

동기창은 중국 예술의 장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는 자신의 산수화에 대해서 평원산수는 조영양의 법을, 중산첩장은 강관도를, 준법은 동원의 피마준과 점자준, 나무는 동원과 조맹부의 법, 바위는 이사훈과 곽희의 법을 사용했음을 밝히면서 자신의 놀라운 구성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의 사용명세서일 뿐이다. 여기에 미불, 소식, 황공망, 왕몽, 예찬의 리스트가 더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호출된 이름들을 다 어쩌란 말인가? 동기창의 산수화는 중국 회화사에 나타난 화법의 총결산이다.

그의 오만한 박람강기는 중국 회화사를 종횡한 다음 그의 손을 통해서 기형적인 한 공간을 우리 앞에 구성해 낸다. '완련초당도(婉戀草堂圖)'이다. 담박하면서도 청신한 공기가 감돈다. 그러나 왠지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기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가?

그런데 무수한 감식가와 소장자가 그림 속에 찬탄하는 제문(題文)을 지어 써넣고 인장을 찍어댔다. 1989년 북경에서 '완련초당도'는 13억 원에 경매되면서 기록을 세운다.

'완련초당도'는 동기창이 죽마고우이자 예술적 이념을 공유한 동지였던 진계유의 초당을 방문하고 헤어질 때 진계유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을 구성한 요소를 세밀하게 분해해 볼 수 있다면 여기에서 수많은 옛 대가의 양식과 기법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미술사적 지식으로도 우리는 이 기묘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청신함의 기운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이미지의 흐름을 방해하는 저 낡은 훈장 같은 제문과 인장을 거둬내면서 그의 산수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서예의 대가였던 동기창의 선은 요란하지 않다. 광기와 같은 운필의 속도도 현란한 장식의 유혹도 거부함으로써 고담(古淡), 예스럽고 담박한 기운이 형상 사이에 감돌게 한다. 예찬의 '육군자도'를 연상시키듯 근경의 여섯 그루 나무가 절제된 마른 붓으로 그려져 있다. 성긴 가지들은 스산한 가을바람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흐르는 물소리를 여백으로 풀어놓는 굽이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소슬한 한 채 초당을 만난다. 진계유(陳繼儒)의 초당이다.

29세 때 유자(儒者)의 의관을 태워 버리고 은거의 삶을 살았던 사내, 그의 시 한 편이 삶을 잘 보여준다.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기이한 책 만 권을 소장해

기이한 비단으로 책을 씌우고,

기이한 향으로 쬐면서

띠집과 갈대발, 종이창과 흙집에서

평생을 벼슬 없이 살며,

그 가운데서 시를 읊고자 하노라.



은자의 고고한 정신처럼, 저 초당에서 청신한 기운이 시작되는 것일까. 그곳은 화면의 중심이면서 비어 있다. 형상의 빈 터, '빈 중심'이 좌우로 솟고 맴도는 바위와 산의 변화를, 그 이미지의 욕망을 적요한 비움으로 받아들이면서 허락한다. 마치 '고리의 중심(빈 중심)을 얻어 무궁한 변화에 응한다(得其環中, 以應無窮)'는 장자의 경구처럼 말이다.

■젊은 시절, 선종 공부한 영향

	동기창의 '방고산수책'

초당의 빈터를 둘러싸고 배치된 산과 바위가 자못 기이하다. 한 글자도 전거가 없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는 명나라 한시들처럼 하나하나 전거가 있는 옛 화법으로 그렸지만, 누구도 건설해 본 적 없는 공간이 축조되고 있다. 왼쪽 중경에 말리듯이 솟은 토산이 있고, 그 뒤에 거꾸로 박힌 듯한 사각뿔 모양 암산, 암산 옆으로 띠처럼 겹으로 둘러진 언덕 선들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공간은 전례가 없다.

이곳은 감성적 공간이 아니라 이지적 공간이다. 이러한 실험적 공간 분할은 '방고산수책(仿古山水冊)'과 같은 그의 다른 그림에도 지속해서 나타난다. 실제로 동기창이 마테오 리치를 통해 유입된 유럽 기하학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도 있다.

남종화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동기창의 화론은 그의 회화 세계를 완고한 복고주의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기창은 고법(古法)을 수용하되 새로운 변화를 담을 줄 알았다. 창조적 변화가 없는 반복을 그는 혐오하였다. '완련초당도'에서 느끼는 청신함은 동기창의 이러한 변환의 감각과 새로운 공간 창출 능력에 기인한다.

이미지가 스스로 여는 모험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초당 뒤로 지평선이 나타나면서 낮은 언덕과 산이 평원(平遠)의 시점으로 원경처럼 펼쳐진다. 그 뒤로 아득히 허공이 펼쳐지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그 위로 안개 띠가 둘리면서 느닷없이 높이 솟은 토산의 봉우리가 허상처럼 떠 있다.

원근을 거스르는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눈의 습관을 불편하게 하지만, 빈 중심(초당)에 겹겹의 깊이를 만든다. 빈 중심의 깊이는 오른쪽 솟아오른 벼랑에 의해 극적으로 완성된다. 이 벼랑은 화가의 먹이 가장 집중된 곳이다. 마치 정신의 무량한 중량감을 드러내려는 듯 말이다. 그러나 먹이 가장 진하게 모인 곳에 문득 뚫린 여백의 구멍은 무엇이며, 또 왜 이 벼랑의 상단은 갑자기 허공으로 기화해버리는가?

동기창은 젊은 시절 선종(禪宗)을 깊이 공부했다. 남북종의 분류도 선종에서 빌린 것이다. 고리 모양 구멍과 느닷없이 허공으로 사라진 벼랑은 선종의 '돈오'(단번에 깨달음)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초당 주인의 정신에 대한 동기창의 경외심이 이미지로 드러난 것일까. 무(無)가 되는 벼랑의 정신! 그것은 마치 선사의 "할!"처럼 우리 시각을 후려친다. 그러나 진계유는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초당의 빈 중심으로 이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동기창이 확립한 문인화의 계보와 조형 미학은 계승자들을 통해 소위 정통파 화맥을 형성한다. 그것은 차츰 고법의 양식과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화풍이 되어 갔고, 독창적인 창조력은 급격히 고갈되어 갔다. 전통이 종합된 다음에는 아류만이 양산된 셈이다. 그리하여 훗날 개성주의자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