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아이슬러가 여성의 관점에서 본 인류의 역사와 미래의 전망에 대해 분석한 '성배와 칼'은 조지 밀러가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를 만든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지배했던 수직적 관계에서 칼은 전쟁과 폭력을 위한 도구가 되고, 이방인을 접대하는 성배는 보살핌과 화합을 위한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물이 된다.

조지 밀러가 3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매드 맥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인류의 황폐한 미래, 황량한 풍경과 생존의 처절함, 무시무시한 폭력과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도 높은 질주는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거기에 여성적인 연대가 전작의 묵시록을 넘어 전망을 제시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맥스가 아니라 사령관 퓨리오사와 그녀가 이끌고 가는 지배자의 다섯 아내, 녹색의 땅에 거주하는 어머니들이다. 이들이 질주하는 분노의 도로는 서부극의 풍경과 유사하지만 길이 없는 도로를 달린다는 점에서 다르고, 서부극의 사나이가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시켰다면 이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자는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물을 지배하고 엄마의 우유를 통제하는 남성 독재자로부터 도망쳐 어머니가 되거나 신화적인 모성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금속 무기와 온갖 부품을 끌어모아 만든 거대한 자동차,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기계 장치의 부속품인 신인류는 임모탈이라는 지배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는 무자비함과 폭압으로 인류를 다스리고 광신적인 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며, 핵폭발로 파괴된 세상을 자본과 무기를 이용해 더욱 황폐화시킨다. 지구는 죽음의 땅이 되었고, 인류의 미래는 희망을 상실했다. 임모탈 일행의 추격이 원시 전쟁의 형태로 묘사된 것이 흥미로운데, 굉음을 내지르는 밴드가 추격의 일선에 나서고 지배자를 경호하는 자동차 무리가 뒤따른다. 남성들은 IS처럼 정치체계와 종교적 신념의 일치에서 비롯된 행동 강령을 지니고 있다. 생명은 시스템보다 하찮고 독재자를 향한 충성은 스스로 무기가 되어 적들을 파괴한다.

이에 반해 여성들은 죽음으로 뒤덮인 녹색의 땅을 거쳐 퓨리오사의 고향에 도착하고 사막에서도 씨앗을 지켜온 위대한 어머니들과 조우한다. 여성들의 연대는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라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생명의 지점으로 향한다. 새로운 지도자가 된 퓨리오사가 모두에게 물과 젖을 공급하는 장면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던 맥스는 마침내 공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22세기라는 영화의 배경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배척과 살육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 감독이 제안한 답변은 아이슬러의 말처럼 성배의 문화, 삶의 충만함을 믿고 사랑하는 여성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