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슬립'은 말의 영화다. 3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채우는 것은 자연이 빚어낸 터키 카파도키아의 아름답고도 신비한 풍광이 아니라, 좁은 동굴로 만들어진 호텔의 실내에서 오가는 말들의 향연이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풍족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전직 연극배우이자 지역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다. 그의 젊은 아내는 권태를 견뎌내지 못해 남편의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고,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여동생은 오빠의 이중적인 태도에 독설을 날린다. 3명의 인물이 영위하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은 세입자의 어린 아들이 던진 돌멩이로 말미암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무수한 대사와 인용되는 말들, 도덕과 윤리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인간의 위선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가 자기의 존재를 지키고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사소한 행동과 그 결행의 지점이다. 소년은 집세를 내지 못한 아버지가 깡패에게 맞는 모습을 목격했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주인공을 한참 노려본 후 그의 트럭에 돌을 던진다. 하지만 유리창은 깨지지 않고 거미줄과 같은 형태로 균열된 채 새로운 유리로 교체된다.

이후 세입자와 주인 간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세입자의 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찾아온다. 하지만 소년은 억지로 주인의 손에 입을 맞춤으로써 용서를 구하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제스처를 강요하는 어른들 앞에서 기절함으로써 자기의 명예를 지킨다. 마지못해 웃음을 흘리면서도 세입자의 형편에 관심 없는 주인공, 화해와 용서를 명분 삼아 비굴하게 굽실대는 삼촌,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부르주아 여성 앞에서 소년의 거짓 없는 행동은 비록 유리창을 깨뜨리지 못했어도 그 결단에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남편을 대신해 소년의 집을 찾은 아내는 아이 아버지에게 거액의 돈을 건넨다. 물론 그녀는 선의로 돈을 줬지만 가난한 남자는 돈을 타오르는 불에 던져넣는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떳떳한 자신을 증명했고 부유한 자의 자기 만족적인 선행보다 고귀한 그들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소년이 만약 유리창을 조각냈더라면 주인공의 삶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허위와 기만의 왕국은 너무나 견고했으므로 외부에서 날아온 깨우침의 돌은 던진 자 쪽으로 튕겨 나갔다. 소년을 데리고 세입자의 집을 찾은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자신의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 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손은 마지막에 돈을 태우는 손으로 변할 수 있다. 그의 아들도 주인공을 노려보았던 까닭에 부당한 요구에 눈감을 수 없었고, 아버지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보는 눈이 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줄에 묶인 야생마, 사냥에서 잡힌 토끼와 비슷한 처지인 자신을 목격하고도 동굴을 떠날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은 돈을 받고 궁색한 삶을 이어가는 대신 자기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지식인의 거창한 사탕발림과 같은 연설보다 강력한 것은 소년이 집어 든 돌이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