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의 한일관계실에 있는 부산포해전 모형. 배와 배끼리 직접 맞붙어 싸운 해상전투 중심으로 표현해놓은 것이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다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해 본다.

이순신 장군은 부산과도 인연이 깊다. 1592년 음력 9월 1일, 장군은 부산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 부산포대첩이다. 부산 시민의 날(10월 5일)은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정했다. 부산 시민이 긍지에 찬 잔치를 벌이는 부산 시민의 날을 장군이 마련해주신 셈이다.

그런데 부산을 대표하는 부산박물관에 갈 때마다 '이게 과연 맞나' 하는 학술적 의구심과 '부산 사람이 이순신 장군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하는 안타까움에 머리와 가슴이 언제나 불편하다.

부산박물관의 '한일관계사실'에 부산포해전 모형이 전시돼 있다. 조선 수군 판옥선과 일본군이 바다 위에서 엉켜 싸우고 있고 거북선들이 적선을 들이받아 깨트리는 모습 등을 긴박한 분위기로 만들어놨다.

박물관은 '박물관'이므로 무엇보다 학술적으로 엄정해야 한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이 모형은 당시 부산포해전 모습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는가' 물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해전 뒤 직접 써서 조정에 올린 '부산에서 왜적을 쳐부순 장계(釜山破倭兵狀)'는 전투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번에는 큰 적의 소굴에 줄지어 정박해 있는 470여 척 속으로 군사의 위세를 한껏 벌려 승리한 기세를 타고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왜적의 배들은 부산진성 동쪽에 있는 한 산으로부터 5리쯤 되는 언덕 밑 세 군데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큰 배, 중간 배, 작은 배 모두 합쳐 대략 470여 척쯤 되었는데, 왜적들은 우리의 위세를 바라보고는 겁을 먹고 감히 나오지 못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도 '부산진 선창에 적선 5백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고 적들은 육상 진지에 올라가 있었다. 적선들을 불지르고 깨뜨릴 때 적의 육상 진지에서 포격을 시작했다'고 재구성했다.

요약하면, 배와 배끼리 맞붙어 싸웠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이순신 함대가 왜병의 목을 직접 벤 갯수도 0이다. 이순신 장군이 배끼리 부딪친 접전 상황을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적선은 대부분 '정박'해 있었고, 적은 '감히 나오지' 못했으므로 전투 양상은 포격과 사격 중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박물관의 부산포해전 모형은 이 전투의 중심을 전함과 전함끼리 엉켜 싸운 해전처럼 표현해 놓았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아예 틀렸을 수도 있다.

관람객에게 흥미로운 장면을 선사하려고 실상과 약간 달리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박물관'의 정식 전시실 내부이다. 부산박물관 내 동래장터 모형처럼 정식 전시실 바깥에 설치했다면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겠지만, 전시실은 무조건 학술적으로 엄정하기를 관람객은 바란다.

만약 이 모형에 별 문제가 없다해도, 부산포해전이 정확히 어디서 펼쳐졌는지 그림안내판만 있어도 숱한 관람객이 고객을 끄덕거릴 텐데 찾아볼 수 없다. '이 모형은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가상으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도 없다. 부산 시민의 날을 마련해 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부산의 대접이 새삼 허술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