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건널목 앞, 버스정류소 근처, 핵심 상권에 있는 우리 동네 편의점. 얼마 전 생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처음 이용했다. 이 동네에서 11년째 살고 있는데. 그곳은 나의 일상 생활권에 있지만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과자, 음료, 삼각 김밥, 컵라면 등의 간식거리를 사 먹는 가게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편의점을 동네 '매점' 정도로 생각하는 내게 전상인 교수가 들려준 편의점 이야기는 '거대한 산업'이었다. 편의점은 소비주의 사회의 첨병으로, 합리주의의 화신으로, 신종 도시 인프라로, 사회 양극화와 공존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공간으로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었다.

저자는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 채다인의 '나는 편의점에 탐닉 한다',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 등을 통해 신세대 작가들에게 편의점은 "문화적 아이콘"이자 "도시적 삶과 인간관계의 패턴이 집약된 장소"로 인식되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편의점은 일상의 중심이자 생활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1927년 미국 제빙회사에서 탄생한 편의점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89년으로, 당시 점포는 7개였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2012년 기준 점포 수는 2만4559개로 인구 2075명당 편의점이 하나인 꼴이 됐으며, 하루 평균 880만 명이 방문하며 지구 상에서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제주 남단 마라도, 울릉도, 백령도에서부터 개성공단까지 접수했으며, 시간·장소의 편리성과 상품의 다양성으로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편의점에서 소비자가 구매하는 물건이 스캔 되는 순간 정보가 수집, 분류, 분석되어 빅데이터로 저장되며 소비행태를 읽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 환경은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나라를 '편의점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나홀로족' '삼포세대' 증가 등의 사회적 현상도 한몫했다.

편의점은 대기업과 가맹점주, 아르바이트생이 공존하는 '갑을관계'의 전형이다. 대부분 근로계약서도 없이, 법정 최저 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편의점의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전국 48만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양극화 시대를 가장 어렵게 살아가는 '을 중의 을'이다.

편의점의 핵심고객은 20대 학생과 30대 샐러리맨으로 식사를 위해 편의점을 찾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88만원 세대의 밥집은 편의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제 편의점은 주변의 상업시설, 공공기관, 문화공간을 '흡수 통일'하며 만능 복합생활 거점이자 원스톱 유비쿼터스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편의점이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지배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거대한 자본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가속화되고 있는 편의점 사회에 '우리는 편의점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부산시민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