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법을 개악해
- 선령제한을 풀어버린 MB정부

- 참사 대응과정에서
- 무능의 끝을 보여주고
- 진상규명을 회피하며
- 유가족 통제에 급급한
- 지금의 정부

- 말끝마다 법치, 원칙
- 누구를 위한
- 법이고 원칙인가

오나라 왕 합려(闔廬)가 초나라 도성인 영(郢)을 공격해 세 번 싸워 세 번을 이긴 뒤에 오자서(伍子胥)에게 물었다.

"물러가도 되겠는가?"

오자서가 반대했다.

"사람을 물에 빠뜨려 놓고서 물을 한 번만 마시게 하고 그만두면 빠져 죽는 자가 없습니다. 숨 쉬는 일을 그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타서 아주 가라앉히는 것만 못합니다." ― '설림(說林) 하'



오자서는 초나라의 정치가였으나, 부친과 형이 평왕(平王)에 의해 살해되자 오나라로 달아났다. 거기서 공자 광(光)을 도와 보위에 오르게 했으니, 그가 합려다. 오자서는 합려를 도와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뒤, 원수의 나라인 초나라를 쳤다. 평왕은 이미 죽고 그 아들 소왕(昭王)은 도망쳐서 잡지 못했다. 이에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내 300 번이나 채찍질을 했다. 그런 그였으므로 초나라에 대한 공격을 그만두게 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오자서가 한 말에서 바로 1년 전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누구를 위해 법을 만드는가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를 표방한 나라다. 법치주의란 국가가 법에 의거하여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에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로써 해야 하고 행정작용과 사법작용도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법치주의는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20세기에 한국은 바로 그러한 남용된 법치주의를 경험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통해 여전히 법치주의가 남용되거나 왜곡되고 있음을 또 다시 경험하고 있다.

이미 알려졌듯이 세월호 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개정한, 아니 정확하게는 '개악한' 해운법 시행규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자 또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고쳤기 때문이다. 2008년에 선박 수명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였고, 2009년에는 다시 30년으로 늘였다. 주의와 감독만 일정하게 하면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경영자나 실소유주에게는 묻지 않겠다는 조항도 삽입하여 처벌도 완화했다.

이런 규제 완화 덕분에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수명이 다한 18년 된 배를 사서 과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구조 변경했다. 이것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령(船齡)이 20년을 넘기면 위험한데, 2007년에는 선령이 20년 이상인 여객선이 전체의 10%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30%로 증가했다. 그만큼 국민의 생명은 더 크고 광범위한 위험에 노출된 셈이었고, 결국 세월호 참사를 부르게 되었다.

"군주가 법을 버리고 민심조차 저버리면 남의 것은 함부로 차지하지 않는 백이(伯夷) 같은 사람도 위태로워지고, 전상(田常)이나 도척(盜跖) 같은 자들이 함부로 보위를 빼앗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천하에는 백이 같은 이가 단 한 명도 없고 간사한 자들만 끊이지 않고 생겨나니 법과 객관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객관적 기준이 믿을 만하면 백이가 옳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도척은 비행을 저지를 수 없다. 법이 분명하면 똑똑한 자가 못난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없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해할 수 없으며, 다수가 소수에게 횡포를 저지를 수 없다." ― '수도(守道)'

■도찐개찐에 설상가상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해운법 개악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섰어야 할 관련기관과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더해져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수백 명의 선량한 국민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동안, 구조 체계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익에 눈이 멀었던 청해진해운에서는 탑승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해서 번복하기 일쑤였다. 사고대책본부는 전혀 대책 없는 본부였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는 오자서가 말한 '이 기회를 타서 아주 가라앉히는 짓'을 관련기관과 정부가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세월호가 침몰하던 시간에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은 행적이 묘연했다. 여전히 문제의 '일곱 시간'은 해명되지 않고 있다. 사실 어떤 해명도 의미가 없다.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시 대통령의 행보는 원칙에 맞았던가?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15일 오후에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와 관련한 정부의 지원과 준비상황을 보고 받고 미진한 점이 없는지를 직접 점검했으며, 또 대통령이 지난해 약속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에 대한 지원 사항과 추모비 건립을 비롯한 추모 관련 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보고받았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관련해서는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지시하는 데서 그쳤다. 원칙이나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원만하게'라니!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서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3월 27일 해양수산부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해양수산부는 조사를 받아야 할 곳인데, 어찌 진상규명에 앞장선다는 말인가? 더구나 시행령안은 조사대상 축소, 위원장 등의 권한 축소, 사무처 주요직책을 정부 파견 공무원이 장악하는 등 특별조사위원회를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원칙도 없고 법치는 아예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데도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잘 치유가 되도록 정성을 다 기울여 주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는데, 유가족들이 치유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서 한 말인가?

지난해 5월 19일,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라고 말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그런데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위한 유가족과 정부 측의 대립을 지켜보면, 대통령이 스스로 한 말을 지키고 있는지 또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때도 담화를 발표하고 해외 순방을 나섰고, 이번에도 4월 16일에 해외 순방을 나선다. 나라 안에서 원한을 풀지 못하고 도리어 쌓고 있으면서 말이다.

"관리로서 잘 하는 자는 은덕을 심지만, 관리로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는 원한을 심는다. 평미레는 곡식의 양을 고르게 재는 도구이며, 관리는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는 자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형평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외저설 좌하'

법은 국민의 마음에 충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취임할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맹세한다. 그럼에도 이전 대통령은 해운법을 개악함으로써 이 맹세를 저버렸고, 지금 대통령은 유가족의 호소를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통치의 원칙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 나라에 과연 법치(法治)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비가 말했다. "현명한 군주가 다스리는 길은 법에 충실하고, 그 법은 백성의 마음에 충실하다. 그러므로 다스릴 때는 법대로 하니, 그 군주가 세상을 떠나면 백성은 그를 그리워한다. 요임금은 아교나 옻칠과 같은 굳은 약속을 하지 않았으나 당대에 도가 행해졌고, 순임금은 송곳 꽂을 땅도 없었으나 후세에 드리울 은덕을 다졌다." ― '안위(安危)'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매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