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 구간 중 부산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를 거쳐 송정에 이르는 옛 철길. 이곳을 걸으면 숱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국제신문DB

- 매일 오가는 평범한 동네길도
- 자세히 보고 생각하며 걸으면
- 돌멩이 하나도 색다른 풍경
- 새롭고 경이로운 만남 투성이

삶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개는 횡재를 하거나 돈 많은 배우자와 혼인을 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지금의 누추한 환경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관찰의 인문학을 쓴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대답은 다르다. 당신이 풍요로워지면, 삶은 풍요로워진다고 '관찰의 인문학'을 통해 호로비츠는 말한다. 그 방법은 일단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감각과 감수성을 꽃피워보는 것이다. 그럼 감각과 감수성을 꽃피울 방법은? 산책이다. 그런데 약간은 다른 산책이다.

'개의 사생활'이라는 베스트셀러로 미국 독자의 사랑을 받은 호로비츠는 매력적인 책 '관찰의 인문학'에서 같은 동네, 같은 길을 새로운 방식, 다른 방식으로 산책한다. 그러자 새로울 것도 예쁠 것도 없이 심드렁하던 산책길은 요술처럼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신하고, 저자는 내면이 충만해지는 만족감을 느낀다.

저자가 함께 산책한 이들부터 보자. 19개월 난 아들 오그던,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 타이포그래퍼 폴 쇼, 일러스트레이터 마이라 칼만, 곤충 박사 찰리 아이즈먼, 야생동물 연구가 존 해디디언, 도시사회학자 프레드 켄트, 의사 베넷 로버와 물리치료사 에반 존슨, 시각장애인 알렌 고든, 음향 엔지니어 스콧 레러 그리고 반려견 피니건이다.

눈치채셨을 거다. 19개월 난 아들 오그던과 함께한 산책은 어땠을까. 새롭고 경이로운 만남 투성이다. 인지과학 박사이며 심리학, 동물행동 등의 전문가인 호로비츠는 아이들의 세상이 왜 경이로운 만남으로 가득한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인간은 유년시절에 모든 걸 새롭게 본다. 나이가 들면 익숙해져 버린다.

또 아이들은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인식하는 물활론의 성향이 강하다. '아이들은 꽃을 주울 때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몇 송이를 더 줍고, 길거리의 돌멩이가 다른 풍경을 보게 해주려고 위치를 옮겨놓는다'.

자, 그렇다면 다른 산책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호로비츠는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과 함께 아들과 걷던 길을 산책한다. '나는 갑자기 온갖 곳에서 바다 벌레들의 흔적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암석은 그저 생기 없는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바다의 무덤이었다.…옹벽에서 3억 년 된 벌레 자국을 보다니 놀랍군요'. 뉴욕 한복판은 지질학자와 함께한 산책길에서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로 변한다.

문자전문가인 타이포그라퍼 폴 쇼와 함께 같은 구간을 산책하자, 이번에는 글자의 향연이다. 어떤 간판은 멋지다. 끔찍한 간판도 있다. 아름다운 글자를 볼 때 자연스럽게 고양감을 느끼는 폴 쇼를 보면서 저자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사람과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 이게 바로 인문학이다. 그래서 관찰의 인문학이 성립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준다.

이 책 안에는 매력 넘치는 문구가 많은데 셜록 홈즈의 것도 있다. "세상은 명백한 사실들로 가득하건만 아무도 관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네." 관찰만 잘해도 삶은 윤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