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한 공공도서관 외부 모습. 주민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I have always imagined that paradise will be some kind of library'.

UCLA 도서관 입구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란 뜻인데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가 남긴 명언이다.

정말 도서관이 천국의 모습일까. 한국의 도서관을 떠올리면 숨부터 막힌다. 보기만 해도 갑갑한 칸막이, 숨소리만 커져도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눈초리, 그리고 책상마다 놓인 두꺼운 수험서.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 무거운 공기에 눌려 답답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LA 공공도서관 내부 모습. 홀 중앙에 책상과 의자가 있고 주위를 자료가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미국 도서관은 다르다.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즐거운 놀이터 정도는 될 것 같다. LA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공도서관은 의외로 규모가 작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이 대부분 몇 층짜리 건물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LA의 도서관은 중앙도서관을 제외하고 거의 단층 건물이다. 내부도 단조롭다. 큰 홀 하나가 전부다. 홀 가운데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고 주위를 책과 DVD, 신문 등 다양한 자료가 둘러싸고 있다. 작지만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볼 수 있는 전용 공간과 무료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 등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용자 모습이다. 어느 도서관을 가도 수험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꼬마부터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도서관을 찾는다. 이들은 책을 읽고, 잡지나 신문을 보고, DVD를 감상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누구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를 가지고 와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책상마다 전용 콘센트가 있다. 무선 인터넷 환경은 기본이다.

LA 다운타운에 자리 잡은 중앙도서관 외부 모습. 도심에 자리 잡아 접근성이 좋고 내부로 들어가면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에도 대형 열람실을 만들어 놓았다.

도서관의 영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어가 서툰 외국인을 위해 자원봉사자들로 강사를 꾸려 영어 수업을 진행한다. 인종의 용광로인 LA의 특성을 살려 각 나라에서 온 시민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장소도 제공한다. 그리고 오래된 책과 DVD 등의 자료를 시민들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노숙자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놀이터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공공도서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LA에 와서 집을 세 번 옮겼는데 그때마다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LA에 공공도서관이 총 73개였다. 사설 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을 뺀 수치다.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갈 것이다. 72개의 분관을 이끄는 중앙도서관은 다운타운의 빌딩 숲 가운데에 문을 열고 시민을 맞고 있다. 도서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는 대목이다.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는 대학도서관이다. UCLA 캠퍼스 내 11곳의 도서관 중 몇 군데를 둘러보고 도서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동아시아에 관한 서적이 한 개 층을 차지할 정도로 도서관마다 엄청난 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그 책을 쉽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최대한 편하게 공부하도록 배려한 것이 도드라졌는데 심지어 안락의자까지 보였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길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구든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대학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을 방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국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서 도서관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다. 대표도서관 건립 부지가 결정되고 제2 국회도서관 유치에 나섰다는 반가운 이야기들이다. 한편 예산 부족으로 새 책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우울한 뉴스도 섞여 있었다.

앞으로 도서관에 관해서만은 밝은 소식이 쏟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부산의 도서관이 놀이터가 되고 더 나아가 보르헤스의 말처럼 천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마지막으로 놀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