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고층 빌딩들이 무너졌고, 거리에는 시신이 즐비했으며, 밤이 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도시의 오후는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결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러나 사람과 너무도 흡사하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부르기에도 어색한 저 새로운 종족들'(197쪽)이 차지했고, 인간들은 밤이 되어야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재앙 이후(Post Apocalypse)에 간신히 살아남은 소년과 소년의 동생이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

손홍규의 서울은 소년과 소년의 동생이 폐허가 된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사실 재앙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꽤 불편하고 거북한 일이다. 소설 속 재앙의 원인은 모호하고 은폐된 데 반해 인물들의 고통과 비극적인 상황은 구체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은유와 상징성을 띠고 있어 의미를 이해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익숙한 도시 '서울'의 파국을 상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파괴된 서울을 묘사할 때 실제 지명을 쓰고 있는 등 구체성이 불안함을 이끌어낸다. 그러니까 소설은 우리가 사는 도시(또는 '세계')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소년에게 '서울'은 폐허가 되기 전과 이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폐허가 되기 이전의 서울에서 소년의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자식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고 사람들은 그들의 비참한 삶에는 무관심했다.

소년이 본 인간들 또한 '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의 동료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모두 타고난 좀비였다. 세상사에 무관심했으나 무관할 수는 없었으므로 세상이 시키는 일만 의무를 수행하듯 꾸역꾸역 치러내면서 아무런 열망 없이―그러나 이 세상이 자신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겠다는 간절한 열망만은 잃지 않은 채 살았다'(233쪽). 그들은 기계적으로 일상을 보냈으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삶에 익숙해져 갔으며, 타인의 삶에는 무감각했다. 소년에게 과거의 서울 또한 폐허(지옥)와 다를 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아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역사와 인간애(humanism)를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도시는 '좀비'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삶은 정상적인 것인가? 우리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세계의 파국을 예상해야 한다. (자연재해, 방사능,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들로 인해 우리는 파국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파국이 멀지 않음을 인식할 때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이곳이 안전, 안락한 공간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손홍규의 서울은 재앙 이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비관적 상황이나 공포를 유발하는 소설이 아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소년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서울'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증오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도시, 서울에서부터 그 '처음'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