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배우라기보다 감독이라는 직함이 더 어울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35번째 연출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2000년대 그가 만든 미국사회에 대한 해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아버지의 깃발'(2006) '그랜 토리노'(2008) '체인질링'(2008) 'J.에드가'(2011)에 이어 이번에는 이라크전에 참전한 실존 인물에게서 현대 미국의 삶과 죽음을 찾고 있다. 이스트우드가 숙고한 미국의 모습은 현대사의 쟁점을 돌파하면서 이면에 숨겨진 사건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는데, 노장의 시선에 맺힌 삶의 방식이 점점 죽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FBI를 창설했던 에드가 후버의 숨겨진 욕망을 통해 반공산주의와 국가 안보의 관계를 파헤쳤고, 2차 세계대전의 영광 뒤에 가려진 진실과 참회의 문제를 드러냈다.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실종된 아이를 찾으려는 엄마와 사법부 시스템이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추악한 권력의 층도 벗겨냈다. 이제 그가 도달한 지점은 9·11 테러와 이라크전이다.

서사는 비교적 단순하다. 미국인에게는 아군을 구한 '레전드'지만 적군에게는 악마와 같은 크리스 카일이 네 번의 파병을 거치는 동안 매 순간 직면했던 삶과 죽음의 선택이라는 상황이 한 축을 이루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다시 전쟁터로 나갈 궁리를 하는 그의 모습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전쟁터의 스펙터클이나 네이비실의 활약이 승리로 이어지는 노선을 따르지 않고, 동료를 도와준다는 명분에 사로잡힌 저격수의 망원조준경을 통해 전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관객의 눈이 그의 총구가 되거나, 조준경의 과녁이 또 다른 스크린이 되어 적과 마주하는 이미지로 구성되므로 적과 내가 서로를 조준하는 셈이다. 이 같은 형식은 9·11 테러와 전쟁터의 상황을 생중계로 보여주는 것과 정반대로 전쟁이 볼거리로 재현되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감독의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이스트우드가 배치한 바라봄은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저격수의 시간을 체득하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터의 삶과 죽음은 거의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형국이 된다. 숨을 멈추고 대상을 지켜보는 순간에 집중한 이 영화는 탱크와 총이라는 볼거리가 아닌, 총구끼리 마주하는 시선으로 인해 기계가 갈라놓는 생사의 순간, 인간에게 닥친 참혹함과 비극을 관객들이 스스로 마주하도록 제시한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 크리스가 전쟁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가족과 시선을 맞추지 못하면서 비극은 극대화된다. 그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는 죽음과 삶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스트우드는 전쟁에 대해 섣부른 해답을 내놓기보다 서로 겨눈 총의 시점으로부터 통렬한 반성의 장으로 나아간다. 그는 전쟁에 연루된 모두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 고통과 폐허, 약속과 신의가 암흑으로 덮일 때까지 끈질기게 바라본다. 이 시선이 곧 이 영화의 힘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