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해신어' 신축중간본의 일부. '첩해신어'는 역관 강우성이 왜관의 일본인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대화나 통신사를 따라나섰을 때 주고받은 내용을 회화체로 정리해 펴냈다. 일본어 역관들이 가장 애용한 교재였다. 김영사 제공

변승업(卞承業·1623∼1709)은 조선 최고의 갑부로 통한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허생전'에도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다. 그는 왜학(일본어) 역관으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독점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중계무역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업에도 손을 댔다. 조선시대 역관의 사회적 지위는 중인이었지만, 이처럼 경제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문물을 접했기 때문에 외국 문화 수입에도 앞장섰다.

역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중국이나 일본에 보내는 연행사와 통신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중국 또는 일본에서 사절이 왔을 때 이들을 접대하는 것도 역관의 몫이었다. 더욱이 역관은 사행 때 공식 무역을 허가받으므로 변승업처럼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당연히 중인 계급 중 인재들은 역관이 되려고 애썼다. 이는 조선시대에 역학이 발달하는 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에 대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세계 언어학계의 존경을 받는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가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분석하고 정리한 30년간의 역작이다.

저자는 한어, 몽골어, 일본어, 여진어와 만주어 등 조선의 주변국 언어 교육이 왜 필요했고, 어떻게 이뤄졌으며, 가르친 외국어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등을 분석했다. 이렇게 해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이 오늘날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다는 것.

외국어 조기교육, 집중적 반복교육, 생생한 회화 위주의 교육, 외국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교재의 끊임없는 수정·보완, 그리고 전국적으로 시행한 외국어 교육…. 이것만 보면 언뜻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외국어 교육 방식처럼 여겨진다. 외국어 교육의 장점만 죄다 추려놓은 듯한 이 같은 방식은 다름 아닌 조선시대 내내 국가 차원에서 운용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외국어 교육과 역관을 관리하던 국가기관은 사역원이었다. 세계 역사에서 조선처럼 외교 통역관을 양성하는 국가기관을 지속해서 설치, 운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사역원은 태조 2년(1393)에 세워져 갑오경장(1894)으로 폐지될 때까지 500년간이나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