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홍 희곡집에 수록된 '강빈, 조선을 깨우다'의 한 장면.

- 정조와 논쟁하는 선비 이옥
- 청나라 볼모 강빈 등 이야기

이산(정조) : (이옥을 향해 호통) 그 시대엔 그 시대에 맞는 정신이 필요하듯, 그 시대의 글에는 그 시대의 윤리 법도가 있는 법.

이옥 : (두 귀를 틀어막으며) 주상, 당신이 틀렸소! 글은 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 글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필요하오.

이산 :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듯 글에도 그것이 지켜야 할 품위와 격식이 있어야 하느니라.

이옥 :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류가 있어야 하듯 글과 사람 사이에도 소통이 있어야 하는 법이오.

	김문홍 작가

극작가 김문홍 씨가 최근 펴낸 자신의 다섯 번째 희곡집 '지상의 방 한 칸'(해성)에 실은 '방외지사 이옥'의 한 장면이다. 2010년 부산연극제에서 극단 하늘 개인 날이 김태호 연출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조선 선비 이옥(1760~1815)은 문체반정이라는 미명 아래 새롭게 싹트는 시대의 기운을 질식시킨 지배계급에 대항한다.

극에서 이옥은 임금 정조를 향해 "주상, 제발 정신 좀 차리시오"라며 사실상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반발한다. 정조는 이옥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저런 후레자식! 여봐라…"라고 분기탱천한다. 이옥은 불우하게 일찍 죽는다.

수록 작품 '강빈, 조선을 깨우다'에서도 김 극작가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역사를 활용해 형상화한다. 주인공 강빈은 소현세자의 아내이다. 병자호란을 당해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는 볼모가 되어 청나라로 간다. 강빈은 그곳에서 조선 백성을 보듬고 상업과 농업에 도전한다. 그러자 본국에서 인조와 사대부가 즉각 "어찌 법도를 어기고 오랑캐를 상대로 돈벌이하느냐"고 나온다. 강빈은 사약을 받고 죽는다. 극에서 강빈과 소현세자는 노래한다. "조선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네.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두 귀를 틀어막고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네.…" 2013년 광명시민회관에서 이기석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다. 사회적 관심, 비판의식이 숨 쉬는 희곡이다.

부산 연극계에서 다섯 번째 희곡집을 펴낸 것은 흔치 않다. 김 극작가는 책 서문에서 밝혔다. '(연극계가 희곡을 폄하하는 현실은) 작품 분석도 제대로 않는 속전속결주의만이 아니다. 팸플릿에 '작가의 말'을 잘 싣지 않는 것, 펼침막이나 포스터에 작가 이름을 빠뜨리는 경우, 연극제에서 희곡상 상금을 신인상 정도로 책정하는 경우…'. 이렇게 만만찮은 현실에서 나온 책이다.

김 극작가는 서문에서 ▷희곡은 문학적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감각에만 호소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은유를 통해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한다 등 희곡론을 밝혔다. 따뜻한 작품 '지상의 방 한 칸'(2010년 허영길 연출) 등 수록작은 이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는 극작가이자 연극평론가 소설가 동화작가로 저서 30여 권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