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라지지 않고서, 과연 세상이 더 좋게 바뀔 수 있을까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중견 소설가 문성수(사진) 씨가 최근 5년 만에 두 번째 단편소설집 '말의 무덤'(전망)을 펴냈다. 수록작은 표제작 '말의 무덤'과 해양소설 '카보(Cape)호(號)'를 비롯해 모두 7편.

소설집 '말의 무덤'은 각각의 수록작이 저마다 제 이야기만 하는, 각각의 이야기를 그냥 모아놓은 단순한 이야기 보따리가 아니다. 짧게 잡아도 5년에 걸쳐 발표한 소설을 한데 모아놓으니, 한 가지 주제를 향해 선명하게 달려가는 선이 분명한 작품집이 됐다는 점이 인상 깊다.

표제작 '말의 무덤'의 주인공은 역전 광장에 나가 노숙인들에게 "술과 안주는 얼마든지 공짜로 드릴 테니 내 이야기 좀 들어주소"라고 호소하는 신세가 돼버린 인물이다. 특전사 출신인 그는 스파르타식 학습법을 동원해 벼락같이 성공한 학원가의 신흥 성공 신화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이 커지고 돈을 더 많이 벌수록, 이 사내는 학벌과 명예가 목말랐다. 급기야 KBS '아침마당'에 나가기로 했다. '아침마당'에 나간 사내는 자신에게 없는 학벌과 명예를 벌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는 척한다. 결론은? 그의 말이 그의 무덤이 되어 간다. 작가는 암시하듯 묻는다. 말이 무덤이 된 것은 세상 탓인가, 내 탓인가.

'수염의 그늘' 주인공은 서예가 난곡 선생이다. 난곡은 주위 권유로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됐다. 난곡 선생은 청렴하고 공정하게 모든 아파트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입주자 대표에게 주어지는 엄연한 이권을 탐낸 주위의 소인배 같은 이웃은 난곡 선생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교활한 공작과 놀라운 단결력으로 난곡 선생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

마지막 순간에 난곡 선생은 '장(長)' 자리를 탐한 자신의 생활형 탐욕을 반성하지만, 그 반성은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세상이 하수상해서 생긴 '개판' 같은 상황이지만, 난곡 선생은 떳떳하기만 한 건가. 생생한 선상 생활 묘사를 인간 사회에 대한 성찰로 몰고 가는 '잘 빠진' 해양소설 '카보호'와 함께, 이 소설집의 수록작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달라지지 않고서, 과연 세상은 더 좋게 바뀔 수 있을까?"

작가 박완서가 말년에 보여준 '삶과 세상의 단순하지 않음'을 연상하게 하는, 중견 작가의 솔직하고 뚝심 있는 세상 관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