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의 글씨. 조율 제공

- '백곡집' 182편 중 48편 골라 번역

영동대 신범식(교양융합학부) 교수가 최근에 펴낸 책 '백곡(栢穀) 김득신(金得臣)의 산문'(조율)은 한학자가 쓴 학술서이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백곡 김득신(1604~1684)은 17세기 조선 시대 문학사에서 빼어난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사실 그는 문장(산문)에도 매우 뛰어나 깊이 연구하고 알릴 가치가 높다는 점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영조~순조 대의 화가 김득신(1754~1822)과는 동명이인이다.

서계 박세당(1629~1703) 같은 이름 높은 학자도 "아마도 (백곡의) 이 문집이 세간에 통행되면 문장이 좋아서 선인들의 글이 무색해질 것"이라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김득신이 남긴 '백곡집'에 있는 산문 182편 가운데 48편을 골라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를 달고 원문을 실은 것이 이 책이다.

'백곡 김득신의 산문'에서 우리 옛 문학에 특별한 관심이나 조예가 없는 독자라도 눈길을 뺏길 만한 글은 '고문을 읽은 횟수의 기문', 즉 독수기(讀數記)라는 짧은 글이다. 그간 조선 시대 학자의 공부법을 소개하는 글이나 강연에서 간간이 소개돼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놀라운 공부의 풍경이 있다.

'백이전은 1억1만3000번(현대의 셈법으로는 11만3000번) 읽었고, 노자전·벽력금·주책·능허대기·의금장·보망장은 2만 번 읽었다. 제책·귀신장·목가산기·제구양문·중용서는 1만8000번, 송설존의서·송원수재서·백리해장은 1만5000번…. 장자·한서·대학·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에 이르지 못해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만약 훗날 자손이 나의 독수기를 보게 되면, 내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독수기 중)

지금과는 학문과 학습의 환경이 다르던 시절이지만, 선인의 공부법과 마음 자세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 책에 백곡의 산문론을 다룬 논문을 싣고, 재주가 지극히 노둔했으나 성실한 다독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 백곡에 대해 해설한다.

백곡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갖춘 뒤 이 책에 실린 그의 산문을 하나하나 읽어가면 심오하면서 담백하고 아름다운 우리 옛글의 높은 경지를, 백곡이라는 문인의 깊은 사유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