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 않는다'. (77~78쪽)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가 쓴 산문집 '섬'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철학적 사유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물과 현상을 사색한 장 그르니에의 삶에 관한 탁월한 시선은 우리를 진지한 자기성찰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복잡한 인간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 지혜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독한 삶'이라는 낭만적 환상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에 그 정답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31쪽) 그럼에도 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삶에 대한 정열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굳건한 요새를 만들고 그 속에서는 하나하나의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비밀스러운 경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행복은 이 비밀로부터 비롯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는 실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비밀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이미지 공간으로서 자신들만의 격리된 '섬'을 말한다. 여행 중 방문한 낯선 도시의 색다른 풍경과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섬'으로의 여행은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홀로 사유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비에 흠뻑 젖은 비둘기나 새털구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으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가 이 책 서문에 '오늘 처음으로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고 썼듯이, 우리가 모두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알베르 카뮈가 진정으로 부러워할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네덜란드에서 데카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대도시의 피상적인 삶에 육체는 개방되어도 정신만은 고이 간직할 수 있는 삶을 나는 동경한다. 장 그르니에의 '비밀스러운' 삶의 방식에 크게 공감하여 '나만의 섬'에서 자신에게 몰두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두가 깨닫기 바란다.

참고로 지상에서 들어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은 비밀스러운 삶을 위한 '나만의 섬'으로 가는 여정에 큰 여운과 감동을 남기는 매력적인 동반자가 될 것이다. 나의 경험이다.

갤러리 이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