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가 그려낸 젊은 감각'.

책을 덮으면서 든 느낌이다. 작가는 자유분방한 필치로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거침없이 그려내면서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했다. 소재도 다채롭다. 생존에 쫓기며 살아오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중년 남자의 이야기('몸의 소리들'), 굽이 10㎝를 넘어 보기에도 위태로운 구두를 즐겨 신는 할머니의 이야기('까치발구두를 신은 할머니'), 죽음의 입장에서 인간의 일생을 바라보는 내용('올가미') 등 8편의 단편이 제각각 구미를 당겼다.

치과의사 겸 소설가인 허택(63·사진)이 두 번째 작품집 '몸의 소리들'(강 출판사)을 펴냈다. 2011년 첫 소설집 '리브 앤 다이' 이후 3년 만이다.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으니, 3년마다 꼬박꼬박 일(?)을 벌인 셈이다. 허 소설가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글을 쓴다. 나름의 색깔을 띠고 싶어 내 전문성을 글에 녹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작품은 '텅 빈 입안'이다. 예뻐져서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여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 욕망에 이끌려 생니를 뽑고 양악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후유증 탓에 또 몇 개의 치아를 잃고, 다시 당뇨가 덮쳐 하나둘 남은 치아마저 앗아갔다. 마침내 그녀는 모든 치아를 잃고 괴물이 됐다. 치아가 다 빠져 텅 빈 입안, 그런 모습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주인공의 울부짖음을 통해 욕망의 파괴성을 그려낸다.

욕망의 파괴성은 '몸의 소리들'과 '퍼플 카드'에서도 드러난다. 전작은 사람의 몸이 내는 여러 소리를 소재로 했다. 주인공을 비롯해 작품 속 모든 인물의 몸에서 '쨍쨍' 소리가 나는데, 이는 핏줄의 인륜도, 우정도, 약속도 모두 저버리게 하는 이기적 욕망의 소리다.

파괴적 욕망의 맞은 편에는 밝은 욕망의 생명력도 돋을새김하고 있다. 작가는 할머니를 매개로 욕망을 잃어버린 도시 남녀를 맺어주기도 하고('까치발…'), 동질의 상처를 지닌 사람끼리 교감하며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작품('화씨 97.9도')을 배치해 균형을 이루었다.

몇 년 새 부쩍 관심을 두게 된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자살 유희'와 '올가미'에 담아냈다. 저승사자가 서술자가 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올가미'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 동행함을 보여준다.

50년 이상 문학청년의 꿈을 가슴으로만 품어왔기에 한 시가 바쁜 작가. 그는 "시간이 없다는 절박감에 쫓겨 소재도 다양하게, 감각도 젊게 유지하려고 애를 썼는데 부족한 게 많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세대의 결혼, 출생 등에 대한 생리학적 거부감을 소설로 풀어보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