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북멘토 제공

- 선생님에 성추행 당한 초등생
- 가족들 사건 해결 나서지만
- 도리어 명예훼손 가해자 몰려

- 친구·학부모는 교사 편에 서서
- 거짓 증언으로 무죄 끌어내
- 학교·검찰도 피해가족 외면
- 사회 저변 '권력에의 굴종' 비판

나는 사람이 두렵다는 성추행을 당한 '소년'이 사건을 숨기려는 학교와 벌이는 진실 게임을 그린다.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도가니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00~2005년 광주의 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인 인화학교에서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성적 학대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도가니 사건'은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얼핏 보기엔 장애인 성폭행을 다룬 '도가니 사건'과 소년 성추행을 다루는 이 책은 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남성이라는 부분은 사회 통념상 가해자에 위치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몸에 가해지는 성적인 폭력은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성폭력에선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들어서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성폭력의 피해자를 '여자 아동·청소년'에서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했다.

초등학교 4학년 준우의 담임교사는 남자아이들의 성기를 만진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준우와 친구들은 담임교사의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준우네 부모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자, 다른 피해자의 부모들은 준우네 주장을 거짓말로 몰아간다.

학부모끼리 말을 맞추자 친구들도 준우를 따돌린다. 준우네 가족은 명예훼손 사건의 가해자로 공격당한다. 학교는 사과를 거부하고 교육청은 책임을 미룬다. 사건을 맡은 검찰은 일을 건성건성 처리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믿어야 할 곳은 모두 약자인 준우네 가족에 등을 돌린다.

준우의 친구들조차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한다. 자신들을 이끌어가는 어른들의 논리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스스로 비겁한 처세법을 터득해나간다. 준우와 같은 피해자의 입장이던 이들은 순식간에 가해자로 둔갑한다.

준우와 가족들이 망가져 가는 모습이 눈물겹게 묘사된다. 1심 판결에서 자신을 성추행한 교사가 무죄를 선고받는 것을 보고 컴퓨터에만 빠져드는 준우, 다른 학부모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명예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준우 엄마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어린이 책이지만,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방전은 빠른 호흡으로 진행된다. "저는 준우네가 피해를 보았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담임교사의 뻔뻔한 말은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부산 출신 작가가 쓴 이 책은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권력을 향한 굴종'을 비판한다. 우리 어린이가 자신도 모르는 채 '강자의 교육'에 길들어가고 있지 않은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