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제11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 '책 마을로 가자'를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 붐비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17일 오후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 왁자지껄해졌다. 부산 광일초등학교와 보수초등학교 어린이 100여 명이 이날 개막한 제11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를 찾아왔다. 어린이들은 살피더니 이내 한 권을 골라 친구들과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책을 읽었다. 골목이 도서관으로 변했다.

광일초등 김태경(여·36) 교사는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에 맞춰 어린이들이 직접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고 나중에 학급문고에 기증하는 현장체험을 나왔다"며 "헌책을 싸게 살 수 있는 문화축제라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좋은 계기가 된다" 말했다.

행사 주제를 '책 마을로 가자'로 잡은 올해 책방골목 문화행사는 19일까지 열린다. 문학책 전문, 만화 전문, 참고서 전문 등 저마다 특색을 지닌 서점들이 특기를 살려 '1 책방 1 이벤트'를 하고, 강연 공연 전시 등 책과 연결되는 다양한 행사에 가족이 함께 즐기는 체험행사를 지난해보다 많이 늘린 것이 올해의 특징이다.

최근 책방골목에는 친근한 분위기의 카페가 늘고,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도 많아져 전국구 문화명소라는 명성이 더 높아졌다.

지난 8월에는 서점의 낡은 차양막 47개를 걷어내고 산뜻한 색상의 새 차양막을 설치했고, 보수동책방골목 어린이도서관까지 개관했다. 이런 손님맞이 새 단장 뒤에 치르는 올해 문화축제는 책방골목의 분위기를 한결 더 산뜻하게 했다.

이날 책방골목에서 만난 시민 구영란(44) 씨는 "헌책을 중요한 콘텐츠로 활용하는 문화축제는 이곳 말고는 없지 않느냐. 헌책과 새 책을 사고 파는 책방이 40여 개나 몰린 곳도 국내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축제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관록을 자랑하는 헌책방 주인들의 책사랑도 다른 곳과는 차이 나는 이 문화행사의 자랑거리다. 한 여고생이 우리글방 문옥희 대표에게 "'박제된 손' 있어요?"라고 묻자마자 문 대표는 "아쉽게도 그 책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여고생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다 외우느냐"라고 신기한 듯 되묻자 문 대표는 "한 권씩 정성 들여 사들인 책이다 보니 따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37년째 대우서점을 운영하는 김종훈(63) 사장은 "좋은 인문학책 한 권만 추천해달라"는 부탁에 빼곡히 쌓인 책들 사이에서 쉬진시웅(許進雄)이 쓴 '중국 고대사회'를 내줬다. 김 사장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만한 책이다. 1991년 나온 이 책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며 책방골목의 강점을 자랑했다. 그는 "이곳 서점 주인들은 단순히 책을 판다기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는 올해 열한 번째 문화행사를 열면서 현재의 책방골목을 넘어 '책마을'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양수성 번영회장(고서점 대표)은 "아직 '선언' 수준이지만, 올해를 '책마을 조성 원년'으로 잡았다"며 "영국의 유명 책마을인 헤이온와이나 일본 도쿄 간다 고서점거리 등을 참고로 책과 문화가 함께하는 책마을 조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산복도로와 책방골목을 잇고 중앙동과 동광동의 고미술품점 등을 연결하면 부산만의 책마을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동책방골목]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