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 3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은 환상적이었다. 카르멘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관객, 특히 뭇 남성의 혼을 빼놓는 연기를 선보였다. 깊이 있으면서 음정 사이를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노래한 백재은은 '요부' 카르멘을 잘 표현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활동하는 팀이 무대와 연출을 맡은 화려한 무대도 볼거리였다. 부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연이었다.

화려한 '카르멘'은 해운대문화회관의 지난달 27~30일 창작 오페라 '해운대-불멸의 사랑(이하 해운대·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이 벌인 '무대와의 악전고투'와 대비됐다.

'해운대'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지자체 문화회관이 만든 창작 오페라라는 타이틀을 달고 탄생했다. 올해로 2년째를 맞는 '해운대'는 전국 최초라는 명성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공연이었다. '해운대'는 오페라의 틀을 깨는 작품이었다. LED 조명으로 차갑고 현대적인 느낌을 만들어냈다. 강렬한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극의 흐름도 다이내믹했다. 특히 신라의 침입을 받은 장산국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부분은 빠른 호흡으로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직관적인 캐릭터에 수준 높은 가수들이 출연해 공연의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장산국'이라는 부산의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그 상징성도 충분했다. 오페라 합창단 사이에 숨어있는 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공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슬랩스틱 개그만 제외하면 연출에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문제는 무대였다. 무대 제작이나 배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무대가 너무 비좁았다. 회전식 무대가 아니라서 다양한 배경 효과도 넣을 수 없었다. 공연장 막이 없으니 서곡도 없었고, 당연히 커튼콜도 없었다. 음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가수들의 노래가 죽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제대로 된 극장이 없어 콘텐츠가 죽는 사례는 '해운대'만이 아니다. 사실은 '카르멘'이 열린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도 커튼 형태의 무대막이 없고 밋밋한 가림판만 있다. 이 때문에 '바그너 커튼' '길로틴 커튼' 등 커튼으로 자아내는 효과는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바닥에 발걸음 소리를 줄여줄 카펫도 깔려 있지 않아, 공연장 안내원들이 신발을 벗은 채 극장을 돌아다닌다.

음악계 관계자들은 축구에 전용 구장이 있듯이, 음악도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장르별로 특성화된 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최근 설계에 착수한 가운데 음악계의 관심은 시민 의견을 바탕으로 건립이 결정될 '시민아트센터'로 모인다. 음악계 관계자들은 시민아트센터 건립이 확정된다면, 다목적홀이 아닌 음악 전문 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문화회관 박성택 관장은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극장에 따라 그 질이 좌우된다"며 "음악 전용 극장 설립은 부산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