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위협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라는 사실에 끔찍하기만 하다.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순간 고통은 찾아온다. 고통의 굴레에서 침묵만은 하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온갖 말을 쏟아내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울음을 토해내고 분노를 터트린다. 상처와 고통을 담은 세상의 모든 소리는 견고하고도 단단한 그곳을 향한다.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보아도 그곳에서는 응답이 없다. 우리는 "건반 위의 흑백처럼/운명은 반음이/엇갈릴 뿐이고,/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다시 듣고 싶은/당신의 거짓말"('사랑')이라도 듣고 싶다.

고통의 현실 세계에서 "발걸음 잠시 길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어쩔 수 없다는 듯//이내 길 안으로 들어와 성큼성큼 걸어간다//벗어날 길 없다"('새벽길')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세계의 끈을 붙잡고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문학이라고 답할 것이다. 불완전한 삶을 깊이 응시하고 비극적인 현실의 고통을 헤아려줄 수 있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지금 박후기의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시편들을 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 세계는 평택에서의 유년과 얼룩진 현실에서 체득한 경험의 산물이다. 자신의 근간을 바탕으로 생성된 시어를 통해 비극적인 운명과 삶의 비애를 드러낸다. 비루한 세계를 비추는 시어들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깊은 울림을 준다. 때로는 열망하고 때로는 절망하는 현실과 마주하는 시편들에 눈길이 머무른다.

"주검이 주검을 끌어안고/한세상 건너는데/살아남은 사람들은/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다랑쉬오름')

"고상돈은 매킨리봉 크레바스에 빠져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 ('크레바스')

두 편의 시를 통해 들여다보지 않았던 내밀한 내면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처연한 삶의 실상과 대면해야만 하는 고통으로부터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자각하게 된다. 바로 현실 세계에 파묻혀 통찰하지 못한, 진실이다.

견뎌내야 할 삶의 한가운데에서 겪는 고통 속에 진실이 놓여 있다. 시어의 간격 사이로 번져 나오는 진실이야말로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결정체가 될 것이다.

"부침개처럼/술판이 뒤집어진다/엎어진 김에/쉬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막차가 도착하기 전/미혹에 걸려/넘어진 마음/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국수')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 그러하듯 진실이 세계를 전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삶의 의미와 진정성을 회복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세계와 가까워질 것이라 믿는다. 진실한 믿음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사건이 아닐까.

소설가


▶이미욱=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 계간 '작가와사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