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의 세월호 추모 게시판을 발견하고 잠시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말을 서서히 잊히게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게시판에 들어갔던 나는 아뿔싸! 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하는 글을 보고 말았다.

"이제 슬슬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부터는 슬픔을 딛고 무너지는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차라리 듣지 말았으면 했던 말도 있다. 한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한 어르신의 큰 소리. "세월호 유가족이 청와대에 왜 기를 쓰고 가냐 말이다, 박 대통령과 세월호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필자는 오늘 '폭력'(暴力)이라는 책을 소개하려 한다. 보지도 듣지도 말았으면 하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책을 꺼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다 보고 듣고 말았을 때 이 책의 1장 '폭력의 정치학' 가운데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민=인간'의 겹쳐쓰기 트릭은 난민·무국적자에 의해 폭로될 것이다. '국민'의 외부에 내버려진 난민과 같은 존재자는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생명으로서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상, '국민≠인간'이라는 사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국민국가 내에서 '국민'으로 균질화했던 인간이 그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다면 국가에서 배제되어버리는 '배제의 폭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세월호와 관계된 발언들을 보고 들으며 '배제의 폭력'을 떠올렸던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명이 있음에도 세월호는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반 이상이 뽑아 놓은 대통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길을 방해하는 유가족은 어쩌면 국민에서 제외돼 이미 난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과 생명을 도외시하는 경제 논리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얼마나 곪게 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곪은 속내를 모두 드러냈던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썩은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예의 그렇듯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로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고 앞을 향해 달리라고 강요하기 시작한다. 적당한 희생양들을 눈에 띄게 전시한 채….

'폭력'의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폭력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으로서의 폭력으로 인간의 통제를 넘어 솟구친다는 뜻을 가진 영어 바이오런스(violence), 둘째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강렬한 힘 '권력'과 흡사한 의미로 독일어 게발트(Gewalt).

주체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힘과 의지대로 되는 힘,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진 폭력이란 단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폭력을 이성으로 길들이고 흡수하는 과정을 우리는 여태까지 옳다고 강요당해 왔다. 개인의 의견과 안전은 국가의 발전이란 이름으로-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등-무시당해 왔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또는 신성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아직도 도처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야성을 이성으로 길들이고 흡수하는 과정 속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책에서 소개한 아이히만이란 독일 사람의 예가 그것이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절멸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의 실질적 책임자였다는 그는 잔학한 행위의 중심에 있었지만, 광신적인 반유대주의자도 절대적 권력자도 아닌 평범한 공무원,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뿔싸! 필자는 또 놀란다. 명령에 의해 자기 윤리를 감추고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