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공연 모습.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는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며 지난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분기점이 되었다. 국제신문DB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듯, 자연은 인간의 사정이나 의지 따위를 헤아려주는 법이 없다. 무심, 무감, 무정하며 그저 완전에 가깝게 효율적으로 운행될 뿐이다. 한눈파는 일 없이 쓸모없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 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은 밥을 먹고 똥을 싼 뒤에도 만족하지 않고 두리번거린다. 틈만 나면 한눈팔고 몽상하며 기어코 쓸데없는 것들을 욕망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인간이기도 하다.

■쓸모없는 것에 주목할 때 인간

욕구(needs)와 욕망(desire)은 다르다.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이 욕구와 연결된 것이라면 한눈을 팔고 쓸데없이 두리번거리는 것은 욕망과 닿아있다. 거칠게 말하면, 욕망은 문화적인 것이다. 현대에 욕망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때문이다. 그는 욕망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과 문화, 나아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분석틀을 제공했고 욕망은 욕구의 문제 이상으로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데 아주 중요한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오늘날 현대인의 욕망은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나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던 라캉의 유명한 테제처럼, 현대인의 욕망 대부분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부모가 욕망하는 대학, 친구나 타인이 욕망하는 사회적 지위나 부, 상사나 미디어가 욕망하는 스펙을 마치 자신이 욕망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시시각각 소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욕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포기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동인(動因)이다. 현대의 욕망 대부분이 타인, 광고, 이념 등으로부터 호명된 욕망이라 해서 욕망 자체를 버리고 도인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그 역시 얼마나 대단한 욕망인가.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병든 욕망'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건강한 욕망', 이 건강한 욕망은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가장 원초적 힘이다. 또 이처럼 인간이 자기 안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욕망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를, '자연'에 대응하여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

■'나를 위한 세대 The Me Decade'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

1970년대 서구에서는, 이러한 자유의지와 욕망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나를 위한 세대 The Me Decade'가 출현했다. 이들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거대담론에 반감을 드러내며 그 어떤 가치보다도 개인의 욕망과 자유의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경제적 풍요(욕구)와 형식적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에서도, 1990년대가 되면 이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87년 체제' 이후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획일화된 대중문화의 소비자로 전락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떤 이념이나 가치로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진실한 감정 표현과 자아 구현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세상이 바뀐다고 자기가 행복해지는 건 아님을 알게 된 냉소적인 세대였고 달리 말해 대의(大義)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자유의지를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한 거의 최초의 세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바로 이런 시기였던 1992년 3월, 벼락처럼 등장해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며 지난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엄숙주의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일약 '나를 위한 세대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데뷔곡 '난 알아요'는 제목에서부터 '나'를 내세웠다. 이처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있다'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노래하던 그들에게 젊은 세대는 열광했고 기성세대는 당황했다.

어느덧 서태지가 데뷔한 뒤 20년이 지났고 그에게 열광했던 당시의 풋내기(?)들은 30, 40대가 되어 한국 사회 각 분야를 받치는 허리가 되었다. 당시 그들이 공유했던 '나', '욕망', 혹은 '자유의지'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변화해왔고 또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서로의 자유를 응원하는 탑밴드 피아(彼我)의 외침! "Yes, You Are!"

1998년 부산에서 결성해 맹활약하고 있는 피아의 공연 장면. 피아 제공

지난해 KBS탑밴드2에서 우승하며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받는 피아는 2002년 서태지가 영입하며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전부터 상당히 유명했던 밴드였다. 이들은 데뷔 앨범 발매 이후 15년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멤버 교체도 없이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부분 멤버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밴드 생활을 시작했을 만큼 자신의 욕망과 자유의지에 충실했기 때문에, 독특한 삶의 방식을 잘 인정하지 않는 한국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모험을 꿈꾸는 이들이 느낄만한 답답함을 잘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더욱 각자의 다양한 삶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이 힘이 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그들도 정상적(?)인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거나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묵묵히 2009년 서태지의 품에서 나와 직접 자신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등 모험을 택하고 있는 그들은 5집 앨범의 타이틀곡 'Yes, You Are'를 통해 노래한다.

"우주는 우릴 향해 보란 듯이 별을 비춰/ 네 창들에도, 이 빗속에도, 네 꿈속의 눈물조차도/ 너의 눈물에서 피어난 꽃일까, 아픔은 달콤해질 네 청춘의 바람/ 아름다운 영혼에 뜨거운 축배를! Everybody stand up for yourself, Yes YOU ARE!".


# 서태지의 우산을 벗어나 끝없이 도약하는 '탑밴드' 피아

서태지는 10대부터 록밴드 '시나위' 등에서 활동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데뷔하며 폭발적인 인기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당대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1996년 돌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와 은퇴를 선언했으며 1998년부터 솔로로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서태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장르적으로 크게 확장됐다. 또 사전 심의제 폐지 등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며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피아는 1998년 부산에서 결성돼 활동하다 이듬해 부산MBC록페스티벌에서 '기름덩어리'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로 활동지를 옮겨 2001년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이 앨범 이후 일약 인디씬의 대표밴드로 유명세를 얻었다. 2002년 말 서태지 컴퍼니에 합류했고 이어 세계적인 거물 록밴드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린킨 파크(Linkin Park) 등의 내한 공연에 오프닝을 맡는 한편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더욱 활동영역을 넓혔다. 현재까지 5장의 정규 앨범을 비롯해 여러 장의 EP와 OST에 참여했다. 2009년 서태지 컴퍼니에서 나와 독자적인 활동을 펼쳐고 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등 유수의 록페스티벌과 투어공연, 지난해 KBS탑밴드2 우승 등을 통해 명실공히 한국 록음악을 대표하는 밴드로 성장했으며 대중과의 접점도 확대하고 있다. 매년 부산록페스티벌에 참여하며 부산을 찾고 있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