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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한일 신 실크로드 <11> 조선과 일본의 힘겨루기, 오사카에서 벌어진 씨름판

막부 명령이 떨어졌다 "조선 씨름과 일본 스모, 누가 더 센지 겨뤄보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22 19:36:3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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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기록의 표지. 일본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宗家文庫 기록류
- 배를 끄는데 동원된 조선 곁꾼들
- 사행단 일행이 에도로 떠난 뒤엔
- 정박지 오사카항에서 선상생활
- 일본측서 육지 올라가 휴식 배려
- 곁꾼들끼리의 씨름경기 주선
- 막부측, 일본 스모와도 시합 원해
-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까 우려
- 대마도 관리가 적극적으로 만류
- 국가대항전 결국 성사되지 못해

■기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통신사기록의 내용.
조선 국왕이 일본의 막부 쇼군(將軍)에게 보낸 사신의 행차를 가리켜 조선에서는 통신사행이라고 했다. '서로 믿음을 주고받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때의 사신을 일본에서는 조선통신사라고 불렀다. 일본에 간 통신사는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사와 함께 조선 시대 외교의 상징적 존재였다. 통신사에 관한 기록물은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주로 소개되었다. 필담을 통해 서로 대화하면서 남게 된 통신사의 글씨와 그림이 가장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와 달리 통신사 일행 중 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들이 스스로 글을 남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하층민들의 활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부족한 것도 그 이유였다.

■조선 곁꾼의 오사카 체류

통신사행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는 많을 때는 500명이나 되었다. 가장 적을 때도 300명을 넘었다. 그런데 인원 대부분이 중관과 하관에 배치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 배를 끄는 데 동원된 사람이 100명 안팎이었다. 그들이 곧 곁꾼인데 그것을 한자로 격군(格軍)으로 적었다. 1655년부터는 곁꾼들만 오사카에 남겨졌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통신사 일행이 오사카까지만 배로 가고 그곳에서 목적지 에도(지금의 도쿄)까지는 육로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삼사(三使)를 비롯한 통신사 일행이 오사카와 에도를 왕복하는 석 달 동안 곁꾼들이 배를 수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배려하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속셈은 다른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접대를 맡았던 일본 측으로서는 100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오사카에서 에도까지 왕복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도 줄이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사카 치쿠린지의 씨름판

   
1719년 10월 10일 오사카에서 벌어진 씨름 결과를 적은 보고서.
오사카에 남겨진 곁꾼들에게 1719년(숙종 45, 교호 4) 10월 3일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씨름판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조선 곁꾼들이 오사카에 남게 된 뒤로 여러 날이 지났으니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오사카에 머물게 된 곁꾼들은 허락 없이 배에서 내려 뭍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답답하게 배 안에서만 몇 달씩 생활해야 했던 곁꾼들에게는 배 밖으로 나가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조선 곁꾼들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오사카의 최고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니시마치부교(西町奉行)를 맡고 있던 호조 히데오(北條氏英)가 대마번의 담당자를 불러서 그것이 막부의 지시사항임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이렇게 해서 조선 곁꾼들끼리 겨루는 씨름판이 일본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졌다. 10월 10일의 일이었다. 씨름 장소는 곁꾼들이 배를 대고 머물던 시리나시가와(尻無川)라는 강에서 가까운 치쿠린지(竹林寺)라는 절이었다.

10월 20일 히가시마치부교(東町奉行) 스즈키 도시오(鈴木利雄)에게 서면으로 보고된 10일의 씨름 결과를 대마도가 남긴 통신사 기록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그날 모두 15판이 벌어졌다. 박봉립(朴奉立)과 김패로미(金貝老未)가 붙은 첫 판은 박봉립의 승리였다. 두 번째 판 승자는 최고읍남(崔古邑男)을 쓰러뜨린 김지명(金之命)이었다. 김지명은 내리 다섯 명을 이겼지만, 고풍선(高風善)이란 강자를 넘지 못하고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고풍선은 연달아 6명을 이겼다. 요즘 씨름과 달라서 그때는 '지워내기'라고 하여 이긴 사람이 물러나지 않고 질 때까지 계속 힘겨루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열두 번째 판은 이석중(李石中)과 김원성(金原成)이 붙었는데 이석중이 승리했다. 이 두 사람 모두 고풍선에게 패한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패자끼리 다시 붙은 셈이다.

■일본 막부의 조선 씨름 관심

   
치쿠린지(竹林寺)에서 씨름판이 벌어진 10일에 오사카의 마치부교도 그 경기를 몰래 관람했다고 한다. 곁꾼들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아랫도리만 입고서 샅바를 잡고 하는 조선 씨름이 꽤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서로 응수하는 것을 보니 일본 스모(相撲)처럼 손을 잡는다든지 붙어서 밀어내는 기술은 쓰지 않았다고 했다. 조선 씨름이 일본 스모와 다른 점이 일본인이 보기에도 한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조선 곁꾼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던 씨름판이 더 커질 조짐이 보였다. 10월 13일 대마도의 담당 관리가 다시 오사카 마치부교에게 불려 갔다. 조선 곁꾼들이 일본인을 상대로 겨루기하도록 하라는 막부의 뜻이 그 자리에서 전달되었다. 처음부터 조선인과 일본인이 겨루는 씨름판을 원하고 있었던 막부 쪽 속내가 드러났다.

■불발에 그친 국가 대항전

대마도 관리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바람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씨름 겨루기는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이것은 스트레스 풀자고 시작한 씨름이 자칫 입씨름으로 번져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10일에 조선인끼리 한 씨름조차도 자칫 나중에 삼사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라고 걱정하는 대마도 관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본 스모가 거칠어서 조선 씨름과 서로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운 10월 21일 자 보고서가 막부 로츄(老中)에게 전달됨으로써 두 나라의 국가 대항전 씨름판은 불발로 그쳤다.

왜 일본 막부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겨루는 씨름판을 열도록 오사카 마치부교에게 지시했을까? 문사(文士)들의 필담을 통한 대화가 '입씨름'이요, 학문과 문화 측면의 한판 승부였다고 한다면, 직접 몸으로 힘 대결을 펼치는 '조선 씨름'과 '일본 스모'의 겨루기야말로 일종의 무위(武威)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막부 관리가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막부 상급 관리의 지시였는데도 대마도의 하급 관리가 그것을 거부한 것에서 통신사행을 바라보는 막부와 대마도의 시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 향후 조선통신사 연구 오사카 씨름판 주인공들, 고풍선 김지명 서시석 등 하층민에도 관심 가져야

1719년 기해 통신사 일행은 모두 479명이었다. 정사 홍치중(洪致中), 부사 황선(黃璿), 종사관 이명언(李明彦)이 당시 삼사(三使)였다. 제술관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을 비롯한 여러 사행록이 그때 일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사행 참가자 479명 전원의 명단을 적은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를 보면 이른바 하관(下官)으로 분류된 '아래 것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총 479명 가운데 중관이 160명, 하관이 260명으로 이 둘을 더하면 420명(87.7%)이었다. 나머지 59명(12.3%)이 '높은 분들'이었는데, 삼사를 비롯하여 상상관과 상관, 차상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1719년 10월 10일 치쿠린지에서 거행된 씨름판의 주인공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때 오사카 잔류 조선인이 110명이었다고 하는데, 곁꾼만 해서 260명(전체의 54.3%)이었으니 그 곁꾼 중에서 절반이 못 되는 인원만 오사카에 남겨진 셈이다. 중관 대접을 받은 사공 중에서도 일부는 오사카에 잔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719년 10월 20일 오사카의 히가시마치부교(東町奉行)에게 제출된 자료와 당시 통신사 일행의 명단을 기록한 다른 자료를 서로 대조해 보면, 10월 10일의 오사카 씨름판 주인공들을 추적할 수 있다. 먼저 두 기록에서 네 명 정도는 성명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시석(徐時石)은 내리 6연승을 한 고풍선(高風善)에게 진 사람이다. 김돌이(金乭伊, 金石伊) 역시 고풍선에게 졌다. 김순철(金順哲)은 5연승을 한 김지명(金之命)에게 패한 인물이다. 김숭립(金崇立)은 마지막 15번째 판에서 이석중(李石中)을 이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씨름판 참가자들은 기록의 미비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동일 인물로 추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석중(李石中)과 이석준(李錫俊), 김귀연(金貴連)과 김귀선(金貴善), 그리고 고풍선(高風善)과 고봉산(高鳳山)이 그런 예이다. 앞으로 통신사 연구에서 곁꾼과 사공처럼 통신사의 하층을 구성했던 사람들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해 두고 싶다.

정성일 광주여대 서비스경영학과 교수

※공동기획: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학회, 국제신문

※협찬: 한국수력원자력(주)고리원자력본부, YK Steel(주)

※후원: 누네빛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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