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불똥 '세기말 서울 야경'

- 판화 등 민중미술작품 중
- 미적 지평 승화 100여점

1987년 6월 10일. 한국 현대사의 물길을 바꾼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올랐다.

문화예술계에도 많은 자극을 준 6월 민주항쟁은 특히 1980년대 민중미술 장르가 날개를 편 계기가 됐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박제된 것처럼 보였던 민중미술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전 '잠수함 속의 토끼'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산소 부족에 인간보다 먼저 반응하는 토끼를 보고 루마니아 시인 게오르규가 "시인, 지식인은 사회의 이상을 먼저 알아차리고 알리는 존재"라고 한 말에서 차용했다.

	이종구 '오지리 김씨 부부'

특별전은 한국 민중미술의 1세대 작가 작품부터 3세대 작품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으며, 항쟁의 중심지였던 부산 원도심의 주요 전시공간 네 곳(민주공원 기획전시실,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책방골목문화관 전시실, 또따또가 스페이스 닻)에서 다음 달 7일까지 분산 개최 중(가톨릭센터는 22일까지)이다. 전시 작품은 '2013 민중미술 특별전 추진위원회'에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소장한 민중미술 작품 45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을 추린 것들이다.

자문위원인 곽영화 작가는 "이미 끝난 미술사조로 민중미술을 볼 게 아니라 앞으로 사회적 재산, 문화예술 재산으로 민중미술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기대하게 하는 전시"라고 밝혔다.

	홍성담 '가자 도청으로'

민주공원 기획전시실과 가톨릭센터는 '민중미술의 파노라마'로 꾸몄다. 민주공원에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전체상을 조망하는 김정헌, 박경효, 신학철, 이종구, 이철수, 임옥상, 홍성담 등의 회화, 판화, 걸개 작품 40여 점이 있다. 홍성담의 연작 판화집 '새벽'은 1980년 5·18민주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한 홍성담이 항쟁의 과정을 스토리텔링으로 연작화한 판화 36점이다. 이철수, 김준권, 홍성담 등은 민중미술의 주요 표현매체로 판화를 즐겨 썼는데, 새벽의 각 작품은 역사적 사실의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이곳 전시실 오른쪽에 장엄하게 걸린 박경효, 배용관, 서성훈이 공동작업한 대형 걸개그림 '현대노동운동사(1994)'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박 작가는 "1980년대 민중미술에 걸개그림이 전면 등장한 것은 불교미술에 사용됐던 '괘불'의 시대적 변용"이었다면서 "당시 집회 때마다 만들어진 수많은 걸개그림은 화염병의 심지로, 현수막 등으로 쓰이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림은 손에 꼽을 정도다"고 말했다.

	신학철 '황토길'

'판화로 만나는 민중미술'을 선보이는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는 1980년대 사회운동과 발맞춘 판화운동 및 이철수의 작품 10여 점이 출품됐다.

또따또가에서는 '민중미술을 전망한다'를 주제로 민중미술의 미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미적 지평으로 승화한 김정헌, 박불똥, 안창홍, 이인철 등의 작품 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 22일 두 차례에 걸쳐 큐레이터의 해설을 들으며 네 곳 전시장을 탐방하는 '민중의 발길 따라 미술의 눈길 따라'가 열린다.

민주공원 신용철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회운동과 함께 호흡하며 탄생한 1980년대 민중미술의 현장을 재조명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051)790-7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