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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문화 실크로드 시간여행 <8> 조선통신사와 그림

왜인들 밤낮없이 `달마도` 요구, 화원 김명국 "차라리 울고 싶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3-18 19:22:1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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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의 습득도 부분. 1643년, 64.5×52.8㎝, 종이 위 수묵, 시모노세키시립장부박물관 소장. 이정은 실장 제공
- 임란이후 통신사 수행 화원 12명
- 초기에는 일본 지형·풍물 스케치
- 정치·군사적 목적 파견 그림 그려
- 병자사행 이후 문화사절단 역할

- 속도감 넘치는 대담·단순한 필치
- 김명국 선화에 일본인들 푹 빠져
- 콕 집어서 또 보내달라 통사정도

■수행 화원은 문화교류의 핵심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과 '2005년 한일 공동 방문의 해'를 지나면서 양국의 조선통신사에 관한 관심은 역사에서 문화 교류사로 그 화두가 옮겨졌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문화교류 사업이 확대되면서 조선통신사 문화교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이 있다.

조선통신사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외교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으로 나누어 평가하는데, 문화적 교류 측면에서 화원의 역할은 비중이 매우 컸다. 이들은 화가 개인 신분보다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원이라는 공적 입장에 있었고, 이들의 활약도 그런 범주 내에서 평가됐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 간 교류를 위해 파견된 조선통신사, 그중에서도 문화적 교류의 주축을 담당했던 수행 화원은 모두 12명이었다.

초기 사행에서는 대체로 일본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 확보 차원에서 화원의 역할이 필요했다. 도화서 내에서 종6품 이상의 품계를 지닌 인물들이 차출되었고 일본의 지형이나 풍물을 스케치한 기록화를 그리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러나 병자사행에서 김명국의 활약을 계기로 조선화 또는 수행 화원의 그림에 관해 일본 측의 요구가 폭증하면서 수행 화원의 역할과 입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사실 병자사행부터 통신사의 성격이 정치·군사적 면모보다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측면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수행 화원의 활동 역시 본격화되었다. 당시 일본 측은 통신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 세례를 받기 원했고, 이를 통해 인식의 지평 넓히기를 갈구했다. 따라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선진문화의 상징인 조선의 시·서·화의 소장을 원했고, 조선 측에서는 이를 통해 문화적 우월감을 향유하는 동시에 정치적 측면에서의 이점을 얻고자 하였다.

수행 화원의 사행활동은 사행록의 기록자료를 통해 일부 확인된다. 수행 화원들의 역할은 주로 일본 측의 요청에 응대하여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조·일 간 회화적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처럼 수행 화원은 문화교류를 화두에 두었던 통신사절단의 가장 핵심적인 임무를 맡고 있었다.

특히 병자사행에 이어 계미사행의 수행 화원으로 파견된 바 있는 김명국을 통해 '조선통신사와 그림'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차원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류, 김명국

   
김명국의 달마도. 1636년, 83.0×57.0㎝, 종이 위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당시 일본 정부가 공식적인 외교문서를 통해 김명국과 같은 자를 조선통신사 수행원에 반드시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렇다면 양국 간의 문화교류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통신사행에 김명국을 굳이 지정하면서 그의 그림을 얻고자 했던 일본 측의 요청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우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김명국 그림에 대한 일본 측의 높은 선호도를 논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적잖은 문헌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예가 김세렴의 '해사록'이다.

"글씨나 그림을 구하는 왜인들이 밤낮으로 모여들어 사자관 박지영, 조정현과 화원 김명국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는데, 심지어 김명국은 울려고까지 했다."

이는 밀려드는 그림 요청과 그로 인한 작업 강도를 견디다 못해 김명국이 얼마만큼의 고초를 겪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그림에 일본의 조야가 얼마나 열광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을 통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명국이 통신사를 따라서 일본에 갔더니 온 나라가 물결일 듯 떠들썩하여 명국의 그림이라면 한 조각의 종이도 큰 구슬을 얻은 것처럼 여겼다…."
김명국 그림에 관한 선호는 먼저 조선 문화에 대한 우호적인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조선에서 파견된 통신사에 대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인들의 관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왕궁이나 사원 등에서 우수한 문화재를 약탈하고 학자와 기술자를 납치하였다. 끌려간 이들의 인쇄 기술과 도자기류 제조 기술 등은 일본문화 발전에 수혈적인 역할을 했고 이에 힘입어 도쿠가와 시대의 문물 흥륭과 그 후의 메이지유신으로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통신사 파견이 있을 때마다 일본 문화인들은 연도 여관에서 모임을 갖거나 체재 기간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신사와 면접을 이뤄 역사, 경학, 풍물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지식을 얻었고 그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일본인들의 조선화에 관한 관심이 폭주하자 대마번주는 이를 중앙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 증대에 이용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서화 구청은 숙박지가 바뀔 때마다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사행 기간 내내 수행화원의 주요 일정으로 다루어졌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일본인들이 통신사행원들의 서화를 얻는 데 지나칠 정도로 열을 올렸던 것은 당시 쇄국체제 아래에서 외국문화 접촉에 대한 갈망과 임진왜란 등을 통해 증대된 조선 문화에 관한 관심, 그리고 시·서·화 등 고급문화에 대한 기호의 확산이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런 조선화 중에서도 김명국의 그림이 더욱 인기가 있었던 것은 일본의 도식화된 달마도상을 뛰어넘은 김명국의 화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의 발발 이전,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선화와 그 배경을 이룬 선종사상은 유례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모든 예술 분야에 자극제가 되었다. 선종문화의 확산으로 미술에서도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나 수묵화 화풍의 선화가 크게 성행했으며 선사들이 직접 그림을 많이 그렸다. 선화는 자연의 단순함을 통해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형상을 갖추고 있었으며, 새로움을 추구하던 승려들에 의해 유행하게 되었다.

이 당시 일본의 선화는 엄숙하고 기괴한 느낌을 강조하여 도상의 신성을 고취한 반면 김명국 선화의 대담한 필치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그가 그려내는 속도감 넘치는 단순한 필치의 선화는 선종의 갑작스러운 깨달음, 곧 돈오론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그들은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물론 이 당시 일본의 민간신앙에서 달마나 포대화상이 시치후쿠진(칠복신)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김명국의 선화가 그렇게 많이 요구되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병자사행과 계미사행의 수행 화원이었던 김명국은 또다시 1662년 일본 측 요청을 받게 된다. 김명국에 대한 일본 측의 요청은 계미사행에 이어 두 번째이며, 계미사행 때는 우회적으로 '연담과 같은 자'로 요청했지만, 1662년에는 직설적으로 '김명국'을 바로 지목하였다. 병자사행에서 1662년은 26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김명국은 한류를 이끈 장본인이며, 대화원이라 감히 칭할 만하다.

■신문화의 안내자

   
김명국의 예에서 보듯이 그림을 매개로 조·일 양국의 문화 교류를 이루어왔던 통신사 수행 화원은 단순히 수행 화원으로 해야 할 역할에 그쳤던 것은 결코 아니다. 정미사행(1607)을 시작으로 신미사행(1811)에 이르기까지 수행 화원은 일본인에게 새로운 회화적 안목을 열어준 신문화 안내자였으며, 일본의 문화를 조선에 소개한 문화 소통의 주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그림을 매개로 조선과 일본 간의 국가적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상호 간의 교류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 회화사의 비중에서 볼 때도 이들은 단지 수행 화원으로 평가되기 이전에 조선의 대표 화가로서 평가되어야 할 인물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과 관련된 자료로 남아 전해지는 것은 통신사 수행 화원으로 해야 할 역할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통신사 수행 화원으로서 이들의 역할을 조명하는 것이 곧 이들 개개인의 회화사적 의미를 평가하는 일이다.

이정은 범어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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