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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하지 못한 '파국'이 닥쳤을 때 생존법은

좀비·핵폭탄·지진 해일 등 가정, 불안 딛고 일어서는 프로젝트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2-12-28 19:15:1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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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파리대왕'(1990). 파국과 고립을 맞은 소년들이 힘과 미지의 두려움에 굴종하는 과정을 그렸다.
- 공동체 파괴된 현대인과 비슷
- 어느 날 갑자기, 살아남아 버렸다
- 이명석 지음/궁리/1만8000원

좀비영화 전성시대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이래 좀비는 B급 영화광들의 악취미를 충족시켜 왔지만 지금처럼 좀비가 '득세'한 때는 없었다. (5탄까지 흥행한 '레지던트 이블'을 보라)

좀비 영화의 플롯에는 공통점이 있다. 비위 약한 사람의 위장을 쥐어짜는 산 시체들이 급성 전염병처럼 서로를 감염시키며 수를 불리다가 마침내 보통 인간과 좀비의 숫자가 역전된다. 영화 속 주인공은 '나는 전설이다'의 윌 스미스처럼 좀비가 되지 않고 버틴 마지막 인간이다. 주인공은 집안을 엿보며 기회를 노리는 좀비 때문에 극한의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마침내 밖으로 나가 그들을 무자비하게 해치운다.

이명석의 어느 날 갑자기…는 좀비에 둘러싸였다거나, 핵폭탄이 터졌다거나, 무인도에 버려졌다거나, 지진 해일 때문에 고층 아파트에 갇혔다거나 하는 재난(종말)이 닥쳤을 때의 생존법을 시뮬레이션한다. 모두 황당한 가정이지만 파국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고립될 수도 있는 것.

정신을 차려 주위에 활용할 만한 물건이 어떤 것이 있는지, 함께 고립된 사람들의 재능에는 어떤 것이 있는 지 생존에 급히 필요한 것부터 수습하고 나면, 태초 인간의 모습처럼 사람들은 '사회'를 재조직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쥘 베른은 '십오소년 표류기'에서 민주·합리파가 독재를 누르는 이상향을 제시했지만, '파리대왕'의 윌리엄 골딩은 힘에 굴종하고 야생성에 몸과 정신을 내맡긴 소년들의 폭력성을 점친다.

저자는 이제서야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런 파국이 꼭 종말이라는 형태로만 오는 '미래'냐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밀폐된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가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있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재난 상황에서 함께 살아갈 생존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 방법은 홀로 무기를 들고 나가 살육을 감행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된다고.

좀비영화가 판치는 이유는,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이 좀비에 둘러싸인 최후의 인간과 다르지 않아서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는 '마지막 인간'을 '히키코모리(은둔하는 사람)'와 등치시킨다. 은둔자에게는 걱정스럽게 방안을 엿보는 가족마저도 좀비와 다르지 않다. 한때는 같은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는 두려운 존재. 공포의 근원을 퇴치하러 무기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주인공의 모습과 희망없이 고시원에 은둔하다 밖으로 나와 '묻지마 살인'을 감행한 한 고시생의 모습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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