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아 작품 '오데사의 계단'

# 올리비에 캐플랑 매그미술관 재단 이사장

- 통일성·콘셉트 충실한 기획
- 비엔날레 조화로움 뛰어나
- 대중교육적 측면도 엿보여

- 개성적인 한국작가에 관심
- 다양성 무기로 위상 높여야

전위적인 현대미술의 축제가 펼쳐지는 2012 부산비엔날레에 세계적 석학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잇따라 방문해 행사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들뢰즈와 푸코 연구의 권위자인 존 라이크만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미술사)가 전시장을 찾았고, 미국 예일대 미술사학과 교수이자 미디어 아트 연구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조슬리트 교수도 비엔날레를 체크했다.

	올리비에 캐플랑

추석을 앞둔 지난달 말에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비평가이면서 문화부 예술국장을 역임했고, 현재 매그미술관(Foundation Maeght)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올리비에 캐플랑이 부산을 찾았다. 1964년 니스 근처의 생 폴 뒤 방스에 설립된 매그미술관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현대 미술관으로 샤갈, 미로, 자코메티, 조르주 브라크 등 20세기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캐플랑은 최근까지 프랑스 정부의 미술품을 수집·보관·전시하는 '팔레드 도쿄'의 관장을 지내는 등 유럽 미술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그에게 부산비엔날레를 본 소감을 물었다.

-2012 부산비엔날레 총평을 해 달라.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있어 좋았다. 특히 '배움의 정원'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기획됐다. '정원(garden·가든)'이란 주제에 아주 친밀하면서, 건축적으로 작품 구성과 선정이 조화롭게 커뮤니케이션되도록 배치했다.

-인상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함경아의 '오데사의 계단'과 일본 히로시마 핵폭발 장면을 북한 사람들이 수놓은 자수 작품이다. 둘 다 주제와 잘 어울렸다. 오데사의 계단은 정원을 연극적 공간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사적인 공간 개념을 잘 표현했다. 한국의 전통 경치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작품(최선아의 '밖에서')도 주제와 연결됐다. 한국의 스페셜한 정서를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배움'이라는 단어는 교육적이다. 대중과의 소통에서 얼마만큼 효과적인가. 또 예술문화 정책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을 발견했는가.

▶많은 작가들이 소통을 원한다.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미술관이나 아트 센터, 비엔날레 등을 통해 가능하며 이때의 소통은 정책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소통의 방법들을 연구하는 것이 문화계 종사자들의 책임이다. 끊임없이 작가의 존재를 보여주고, 작가와 작품이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연구해야 한다. 사실 '정원'이란 주제는 유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화두다. 문화를 가꾸고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염원과 형식이 담겨 있다. 한국, 일본의 정원과 유럽은 차이가 있지만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토양·장소라는 개념에서 같다. 작품간 관계,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대중을 교육시킬 수 있는 측면도 엿보였다.

-한국 작가와 인연이 많다고 들었다.

▶첫 만남은 1970년대 독일에서 백남준을 만나면서부터다. 이후 이우환(회화), 심문섭(조각) 등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가 소장하게 주선했고,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팔레 로아얄 정원에서 심문섭 전시(2007년·루브르 앞)를 기획했다. 김창열, 김수자 등과 최근에는 한국 젊은 작가 11인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한국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세계무대에서 더욱 필요한 부분은.

▶나는 전형적이고, 스탠다드한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개성을 가진 작가가 많다. 마지막 작품 배치까지 섬세하고, 집중력있게 해내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무조건적인 '인터내셔널(international·국제적)'이 아닌, 뚜렷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

-유럽 현대미술의 동향은 어떤가.

▶중요한 점은, 현대미술은 에꼴(미술 유파)이나 무브먼트(미술 운동)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지금은 다양성이다. 어떤 미술운동 밑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한 작가가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조건 한국 작가들을 보러 오게 만들어야 한다. 아트페어든, 미술관 전시든 실제 보러 오게 만들어야 한국 작가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


# '배움의 정원'으로 단장한 부산의 갤러리들

- 19곳 '갤러리 페스티벌' 참여
- 작품 제작과정에 관객 초대
- 다양하고 색다른 경험 선물

	바나나롱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이홍석 작가의 '친절한 포트레이트' 작업과정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가는 신청자의 사진을 찍은 뒤(위 왼쪽), 스케치를 하고(위 오른쪽), 각자에 맞는 이미지를 조합해 자화상을 만든다(아래). 작업 단계를 보여주는 위 사진은 각자 다른 인물이다. 바나나롱 갤러리 제공

올해도 부산비엔날레와 때를 맞춰 지역 화랑가에서는 주제('배움의 정원')와 연관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 페스티벌'로 진행되는 이 행사에는 갤러리 폼 등 부산의 대표적인 19개 갤러리들이 참여한다. 특히 몇몇 갤러리에서는 작가들의 작품 제작 과정에 관객을 초대함으로써 시민 참여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바나나롱 갤러리에서는 라라, 이소을, 이홍석 3인전을 마련했다. 하이퍼콜라주를 이용한 사진작업을 하는 이홍석 작가는 사진이 시민과 소통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탄생한 작업이 '친절한 포트레이트(자화상)'이다.

작가는 갤러리를 임시 스튜디오로 꾸며, 사진 대신 거울이 들어간 액자 앞에 앉은 관람객의 모습을 촬영했다. 관람객은 미리 신청을 받은 개인 또는 가족이다. 작가는 참여자들로부터 들은 많은 이야기 속 이미지들을 사진과 조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자화상을 만들었다. 작가는 "참가자들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기쁘고 우울하거나, 슬프고 분노했던 일, 희망 등 다양한 키워드를 추출해 거울 속에 반영된 인물과 함께 새롭게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을 통해 작가는 참여자인 시민이 자신에 대해 더 배워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는 6일까지. (051)741-5106

해운대구 우동 갤러리 폼에서는 박자용 작가의 '만들어진 기억 공간'이 소개됐다. 사진뿐 아니라 큐브를 이용한 설치 작업, 음악이 어우러진 무용단의 퍼포먼스는 관객 또한 전시의 한 구성요소로 참여해 교감함으로써 전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설치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용공연은 지난 달 19일에 이어 오는 20일에 열릴 예정이다.

프랑스와 부산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두 나라의 지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기억과 의식의 공간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우선 작가는 사진작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재현하고자 한다. 현실의 여러 곳에 고대 건축물의 모습을 붙여 재구성함으로써 기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삭제, 붕괴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제주도의 한 공간에 서구적 건축 양식을 덧대 매혹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기둥들은 엄숙하고 질서정연한 위엄을 과시하고 있으나 작가에 의해 외부와 바로 연결되는 개방형 구조의 건물로 변주된다.

작가는 "오랜 시간과 행위는 기억으로 저장되고, 저장된 기억은 '만들어진 기억 공간'으로 기록된다"면서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게 되고, 낯선 공간이 익숙해지는 경험을 사진과 큐브 작업으로 풀어보았다"고 밝혔다. 오는 20일까지. (051)747-5301

부산진구 부암동에 자리한 봄 갤러리에서는 부산 사람들에게 자리 잡은 예술과 일상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이완시키는 전시를 기획했다. 장선호 작가는 갤러리 안을 영화관처럼 만들어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일상과 예술의 안과 밖이 역전되는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관객이 부산이라는 삶터의 모습을 스스로 채집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오는 6일까지. (051)704-7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