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까지 부산 해운대 공간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창열 화백이 해운대에서 부인과 함께 포즈를 잡고 있다.

대가의 눈빛은 형형하고, 강렬했다. 단순한 질문에도 오랜 생각 끝에 대답할 정도로 신중했고, 진지한 물음에는 농담으로 받아칠 만큼 여유가 있었다.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83). '물방울 미학'으로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미술의 대표 작가다. 아마도 그의 이름보다는 물방울 그림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김 화백의 물방울 작품. 공간화랑 제공

그는 초기에는 추상화 위주였으나 1972년부터 물방울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물방울 작품만 그려왔다. 무엇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물방울만을 고집하게 만들었을까, 수십년간 한 소재를 파고들면서 작가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부산공간화랑(해운대구 우동)에서 오는 17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김 화백을 만났다. 전시장에는 진짜 물방울을 닮은, 구슬처럼 영롱한 모양과 다양한 표정으로 맺힌 물방울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바탕을 칠하지 않은 캔버스 마대에 내려앉은 물방울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스며들 듯했다. 프랑스와 한국의 작업실을 오가는 그는 지금도 작업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느날 캔버스에 뿌려본 물방울이 아침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걸 봤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서로 다른 색깔로 비치는 것이 바로 작품이고 예술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조형화할까 고민하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다. 물방울을 그린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때가 파리에 정착한 지 3년째인 1972년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엔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다. 작품을 하면서도 현실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나가보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앤디 워홀처럼 웃으면서 탭댄스를 췄다. 한국을 떠나 국제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살아남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국에서의 작업이 지금의 물방울을 만들었다."

작가는 물방울에 어떤 의미를 불어넣는 걸까.

"물방울 하나 하나를 그릴 때마다 모든 노여움, 아픔, 분노 등을 용해시킨다. 물방울 자체가 투명하고 부드럽고 곧 없어지는 그런 존재다." 그렇다고 작가의 물방울은 단순한 물방울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년시절 강에서 뛰놀던 티 없는 마음이었다가, 청년시절 6·25전쟁의 상처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20세기 한국사를 관통하는 고통과 상처의 원형이 진화한 형태"라고 평가한다.

건강 비결을 묻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인터뷰만 피하면 된다"며 활짝 웃은 작가는 "나에게 물방울은 가장 고양된 정신 세계이며, 카타르시스"라고 강조했다.

물방울에 모든 것을 흘려보내는 그는 작업을 통해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051)743-6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