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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2>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

목왕시대 중국 첫 성문법 반포… 신분제 사회 더욱 공고히 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29 18:55:0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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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나라 법치 국가 서막 열다

- 우 임금 보좌한 백이 후손 여후
- 국정 내팽개쳤던 목왕 대신해
- 3000가지 조항의 형법 제정

# 무고한 죄인 만들지 말라

- 예형병시·명덕신벌 대원칙 세워
- 오늘날 죄형법정주의 토대 이뤄
- 권력·연줄 악용하는 행위 경계

# 네 죄를 네가 알렸다

- “불효불우한 자 엄격한 처벌” 등
- 종법제 뒷받침할 조문 다수 규정
- 규제 엄했지만 때론 유연성 발휘

목왕은 서역에서 4년 여를 머물다 돌아왔다. 그때부터 먼 곳에 거주하는 이민족은 서주에 복종하지 않았다 하니 장난처럼 무력을 사용하면 위엄을 잃어버린다는 모보의 말은 과연 그르지 않았다. 물론 국력 소진이라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여후(呂侯 : 혹은 甫侯)라는 신하는 제후 가운데도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고 고했다. 오랫동안 나라를 비워서 기강이 문란해진 탓이리라. 서왕모로 기록된 서역 여인에게 빠졌던 자신의 행적이 민망하기도 했을 왕은 여후에게 형법을 제정하게 했다.
   
주나라는 목왕 대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성문법을 반포함으로써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어지는 법치의 근간을 이루었지만, 이 법들은 신분제와 종법제를 공고히 할 뒷받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진은 천안문광장 인근에 위치한 중국최고인민법원의 외부 전경.
■3000가지 조항의 형법 제정

여후는 우 임금을 보좌하여 치수에 공을 세워 여씨 성을 하사받은 백이(伯夷)의 후손으로 법을 관장하는 사구(司寇)의 직에 있었다. 이때 법을 공표하는 목왕의 변을 ‘사기’의 ‘주본기’를 통해 들어보자.

‘자, 와서 들으시오. 그대들에게 훌륭한 형법을 공표하겠소.

원고와 피고가 오면 옥관(獄官)은 말을 듣고, 안색을 보고, 분위기를 살피고, 귀로 듣고, 눈으로 살피는 오사(五辭)로 심리하시오. 그에 따라 확신이 서면 묵형에서 목을 자르는 대벽형(大辟刑)까지의 오형(五刑)으로 판결하시오. 그러한 판결의 확신에 미치지 못하면 오벌(五罰 : 벌금으로 대체하는 낮은 형)의 예로 벌하시오. 죄인이 오벌에 불복하면 오과(五過 : 다섯 가지 과실)를 적용하시오. 그런데 오과의 난점은 특히 관옥(官獄 : 관리의 권세를 이용하는 등의 행위)과 내옥(內獄 : 연줄을 이용하는 행위)의 경우요. 이런 경우 관리의 죄는 범죄자와 같으니 엄중히 조사하여 벌하시오. 형과 벌을 적용하기에 문제가 있으면 사면하고 용서하시오. 조사가 정확해야 백성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심문을 함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오. 확실하지 못한 사안을 의심스러운 대로 처리해서는 아니 되오.

이렇게 제정한 형이 묵형에 해당하는 조항 1000가지, 의형 1000가지, 빈형 500가지, 궁형 300가지, 대벽형 200가지이니 오형에 해당하는 조항은 모두 3000가지요’

제법 엄정하게 들리나 형의 조항이 너무 많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간책전장의 죄형법정주의

법을 집행하는 기본 원칙은 자못 의연하다. 예와 형을 더불어 시행한다는 ‘예형병시(禮刑幷施)’와 덕을 밝히고 벌은 신중히 한다는 ‘명덕신벌(明德愼罰)’의 대원칙은 오늘날 법 집행의 원칙과 비교해도 과히 부족하지 않다. 특히 3000가지에 이를 정도로 처벌 조항을 세목화했다. 이는 오늘날의 죄형법정주의에 해당하니 중국 최초의 성문법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훌륭하다.

법의 신중한 집행을 위해 진술과 증거가 구비되면 심리한다는 원칙은 요즘의 증거재판주의에 해당한다. 판결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낮은 형에 해당하는 벌로 다루고, 그래도 범인이 불복하면 그 아래 단계의 벌로 다루라는 것은 ‘열 사람의 범인을 놓쳐도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현대의 법 원칙과 유사하다. 또 눈에 띄는 것은 ‘관옥’과 ‘내옥’에 대한 왕의 발언이다. 권력과 연줄을 이용하여 죄를 저지르고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그때부터 특별히 경계해야 할 만큼 흔했던 모양이다. 그뿐 아니다. 구체적으로 법을 집행할 법관의 선발에도 따로 규정을 두었다.

사법관 선발의 기준으로는 삼준(三俊)이 있었다. 이는 ‘오로지 덕으로 법을 존중해 행할 수 있는 사람’ ‘법을 지혜롭게 행할 수 있는 사람’ ‘신중하게 법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또 이러한 원칙으로 선발한 법관에게는 다시 ‘오과지자(五過之疵)’라는 규정을 두어 경계했다. 오과지자는 ‘권세에 의해 판결하는 유관(惟官)’ ‘사사로이 은혜나 원수를 갚는 판결의 유반(惟反)’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로 판결하는 유내(惟內)’ ‘속여서 판결하는 유화(惟貨)’ ‘뇌물을 탐하여 법을 왜곡하는 유래(惟來)’의 다섯 가지 경우로, 이때 법관은 범죄자와 같은 등급의 죄로 물어 치죄하도록 했다. 특별히 ‘간책전장(簡冊典章)’의 원칙도 다시 밝혀 명문 규정이 없으면 소송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으니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주나라 목왕의 초상화.
탁월한 법원칙이 세워졌음에도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바로 ‘예형병시’의 ‘예’ 때문이다. 구체적 조문을 근거로 하는 죄형법정주의와 추상적 개념인 예의 병존이 과연 가능할까?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요즘 법으로 말하자면 ‘국가적 범죄’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군주를 추방하고 시해하는 자는 육시(戮屍 : 시체를 찢는 형)에 처한다’ ‘왕명을 범하면 사형에 처한다’ ‘서민으로 난폭하고 무력을 함부로 쓰는 자, 금령을 범하는 자,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도와 의복을 개혁하는 것은 반란과 같으니 군주가 토벌한다’ ‘무리지어 소란을 피우며 술을 마시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군령에 따르지 않으면 그 군사는 물론 처자까지 사형에 처한다’ 등이다.

‘불효불우(不孝不友)한 자는 엄격히 처벌하고 사면함이 없다’ ‘친족을 살해한 자는 불에 태워 죽이고, 왕의 친족을 살해한 자는 능지처참 형에 처한다’ ‘예를 바꾸고 악을 바꾼 자는 왕명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유형(流刑)에 처한다’ ‘음란한 소리를 내고, 이상한 옷을 입으며, 기이한 기교를 부리고, 기이한 그릇을 써서 대중을 유혹하면 죽인다’ 등은 모두 종법제를 지키기 위한 조문인데 딱 ‘네 죄를 네가 알렸다!’의 근거 조항들이다.
‘살인한 자는 죽여서 저자에 3일을 매달아 둔다’ 등 등은 개인적 법익을 다루는 조문이다. 살인 같은 개인적 법익을 다루는 법조문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형이 난무하는 죄는 대부분 예나 종법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결국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조밀한 종법제를, 3000가지에 이르는 형률(刑律)로 뒷받침한 것이었다. 중국 최초의 성문법이라는 빛에 드리워진 그늘이 너무도 짙은 셈이다.

성문법이라고는 하지만 멸실되기 쉬운 죽간의 기록만으로 모두 전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구전에 의지한 후대의 편집도 아니고 대부분 토지 거래, 소송의 판결 등을 새겨놓은 청동기 명문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다.

어쨌거나 목왕은 서역 정벌에서 돌아온 뒤로도 40여 년을 더 재위에 있었다. 국력은 여전히 탄탄했는지 커다란 반란도 외침도 겪지 않아 비교적 평온했다. 여후가 만든 엄정한 법으로 왕실을 빈틈 없이 수호했고 이렇다 할 자연 재앙도 없었던 덕이리라. 얼핏 생각하면 그처럼 조밀하고 가혹한 법의 규제에 백성의 숨통이 막혔을 테니 반기를 들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릇 압제로는 그처럼 오래도록 버틸 수 없는 것이니, 아마도 엄격한 법으로 위엄을 과시하기는 했어도 실제 집행은 사안에 따라 유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산당 일당독재국가, 21세기에도 ‘천자의 나라’ 표방하는가

- 내일은 중화인민공화국 70주년
- 역대급 열병식서 최신무기 과시
- 군인과 인민 애국심 고취시킬듯

내일 10월 1일에는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린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기념이니 올해로 70주년이다. 열병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군사퍼레이드는 10주년까지는 매년 열렸으나 1999년부터 10년 주기로 열린다.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는 최고 영도(領導 : 중국에서는 주요 지도자를 ‘링다오’로 호칭한다)는 5년 임기를 두 번 연임하는 것이 상례이니 임기 중 한번은 열병과 사열을 하는 최고 영예를 누릴 수 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천안문 열병식은 ‘항일 전승기념 열병식’이었다.
   
중국 국가주석의 천안문광장 열병식 사열 모습. 왼쪽으로부터 덩샤오핑, 후진타오 전 수석.
군사퍼레이드에는 각 군 부대의 행진과 더불어 다양한 무기가 선보인다.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인 국가무력의 과시인 셈이다. 아마 내일 퍼레이드에는 최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D(東風,둥펑)-41을 비롯한 스텔스전투기 J(殲,젠)-20,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대함탄도미사일 D-21 등 다양한 최신 무기가 등장할 것이다.

한편 열병식은 대부분 인민의 가슴을 격동시키고 특히 제복을 입는 군인과 경찰의 자긍심과 충성심을 고양시킨다. 일반 인민 역시 자국의 막강한 무력에 흥분하며 애국심을 고취하게 된다. 2009년 베이징에서 그 열병식을 지켜봤다.

오성홍기를 앞세운 부대 장병을 시작으로 주석단이 도열한 천안문 오문(午門) 앞을 행진하는 분열(分列)은 지상군 장비부대와 공군 항공기의 비행에 뒤이어 해군과 각 함정을 대형 스크린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어 당시 국가주석이던 후진타오(胡錦濤)가 오문에서 내려와 중국산 의전용 무개차 ‘홍치(紅旗)’에 탑승해 행진을 끝내고 도열한 부대 사열(査閱)을 시작했다. 후 주석이 부대를 향해 “동즈먼하오(同志們好)”라고 인사하자 장병들은 “수장하오(首長好)”라고 답했다.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에 ‘최고지도자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대답인 것이다. ‘충성’ ‘단결’ 같은 경례 구호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낯설었다. 그런데 사열이 끝나자 후 주석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동즈먼싱쿠러(同志們辛苦了)”라 인사하고 장병들은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로 대답했다. ‘동지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에 ‘인민을 위해 복무합니다’라는 우렁찬 응답.

   
중국 군대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공산당의 군대이다.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이기는 하지만 군대까지 국가가 아닌 당의 군대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위인민복무’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 공산혁명 초기 마오쩌둥이 내세운 정치구호다. 공과(功過)와 상관없이 천안문 정문인 오문에 걸린 그의 초상과 공산당 군대의 우렁찬 외침은 21세기에도 ‘천자(天子)’는 여전한가, 생각하게 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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