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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27> 천년의 예법을 세우다

천자 장례는 7일상 · 7개월 뒤 안장 … 대부·서민은 3일장 ‘정립’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5 18:54:1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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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법제’로 위계질서 강조

- 주공, 종묘사직 예의 제도 확립
- 천자가 천지 소통 독점 ‘신격화’
- 신분별 의례·사망 호칭도 구분

# 예법, 中 문화 뿌리 내리다

- 천자 ‘하늘 아들’ 명분 천하 통치
- ‘한번 천자는 영원한 천자’ 주입
- 민초는 착취와 죽음 내몰리기도

# 관직 세습 ‘세경세록’ 도입

- 육관 휘하 관직 경대부·사 담당
- 나눠준 땅 수확물로 급료 대신해
- 영구적 복종과 충성 맹세 받아

분봉제는 중세 서양의 영주제와 같이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시대를 달리하며 유사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주공 단이 만든 종법제처럼 조밀한 지배구조의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에 의해 처음으로 중국이 통일된 뒤 중앙집권제가 실시되며 분봉제는 사라지지만 중국 왕조 역사 내내 종법제의 영향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문화를 달리하는 이민족에 의해 왕조의 주인이 바뀐 적도 여러 차례였으나 영향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그들마저 종법제의 그물에 포획되어 정체성을 잃었으니 뛰어나기보다 섬뜩하다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공 단이 그 틀을 확립한 종법제는 수천년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지배체제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이 종법제에 따라서 중국에서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최고권력자 천자만이 천지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사진은 베이징 천단인데,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명나라 때 건축되었다.
■하늘과 땅을 독점한 천자, 엄격한 예로 불가침이 되다

종법제는 혈연과 등급의 위계질서가 그 바탕이다. 하지만 어떤 위계질서도 뒤집어지지 않거나 영원할 수는 없게 마련이다. 주공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기에 ‘예(禮)’라는 매우 조밀한 틀을 짜서 종법제에 덧씌웠다.

먼저는 종묘의 제사였다. 물론 제사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특히 신권을 내세운 상의 정치에서 그 폐해와 한계를 또렷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주는 농경족으로 하늘의 순환성을 익히 파악한 터였다. 그렇다고 아예 제사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을 두려워했고 돌변하는 자연현상도 신과 연계해 생각하기 일쑤였으니. 또한 혈연을 근간으로 하는 제도에서 조상은 더욱 중시해야할 도그마였다.

주공은 종묘사직에 대한 예의 제도, 구체적으로 장소·묘당·규범·의식 등을 정교하게 형식화했다.

조상신을 배향하는 태묘(太廟)는 궁전 좌측 앞쪽에, 사직은 우측 앞쪽에 각각 세웠다. 사직의 ‘사(社)’는 땅을, ‘직(稷)’은 오곡을 대표했다.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이는 오직 천자뿐이고, 제후는 경내의 산천에만 제사 지낼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천지와의 소통을 천자만이 독점하여 그 권위를 신격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천지에 드리는 제사는 성 밖 교외에서 행했는데, 이때도 하늘은 양에 해당하는 남쪽에서, 땅은 음에 해당하는 북쪽에서 지내도록 했다. 이처럼 엄격한 예의 격식은 제기(祭器)에서 화려하게 꽃피어 청동기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했다. 또한 제사를 지낼 때는 음악과 무용이 함께하게 했고, 규모에 따라서 엄숙함과 진중함의 정도를 달리했다. 이러한 음악과 무용은 제사뿐 아니라 출전(出戰) 의식, 회합, 혼인, 잔치 등의 중요한 행사에도 쓰이게 되었다.

등급과 격식은 점점 세밀하고 엄격하게 정해졌다. 장례의 경우 천자는 7일상을 치르고 7개월 후에 안장하고, 제후는 5일상에 5개월, 대부 이하는 3일상에 3개월을 넘길 수 없었다. 또 직위에 따라 죽음을 이르는 호칭도 달리했으니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는 졸(卒), 사는 불록(不祿), 서인은 사(死)였다.

■동서의 신, 4000년 역사의 이면

   
고대 악기인 편종. 주나라 대에 처음 만들어졌다.
엄격한 위계의 원칙과 정교한 예의 질서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가체제를 공고히 하며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되어 이후 수천 년간 사람들의 의식까지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수혜자는 천자를 정점으로 한 소수의 지배계층이었고, 다수의 민초에게는 빼앗기고 착취당하고 죽음에 내몰리면서도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조밀한 그물이었다.

봉건제나 전제군주제는 동서를 막론하고 비슷하게 밟은 역사 도정이었지만 양쪽은 확연하게 다른 의식의 문명세계를 만들어갔다.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신에 대한 의식 차이이다. 서방은 ‘예수(Jesus)’로 대표되는 유일신이 삶과 문명의 정점에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었기에 절대자는 오직 그 뿐이었고, 종교의 이름이든 국가라는 체제든 절대 권력의 통치자 역시 명백히 신이 아닌 사람, 기껏 대리자였으니 민중 역시 사람으로서 공동의 선이나 이익을 위해 따르는 것뿐이었다. 물론 권력은 본디 강압을 속성으로 하는 것이니 억압과 착취는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사람, 뒤집어엎어도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일이지 신에 대한 반역은 아닌 것이었다.

반면 중국에서의 ‘천자’는 이름 그대로 ‘하늘의 아들’로서 천하를 통치했고 조밀한 예법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람의 아들’임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천자가 반포하는 ‘력(曆)’에 따라 농사를 지으니 그가 하늘의 아들임을 부인하기 어려웠고, 천지에 드리는 제사도 오직 그만이 할 수 있었으니 사람임에도 하늘(神) 그 자체로 여겨져 한번 천자에 오른 이는 어떤 경우든 전복할 수 없는 의식의 문명이 만들어졌다.

이미 말했지만 중국은 여러 차례 이민족 왕조가 들어섰고, 그들은 오랑캐라 부르던 족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고 다시 한족이라는 주류세력이 정권을 되찾아 새로운 왕조로 복원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오랑캐 이민족 왕조는 침략정권으로 그 정당성을 부인해 역사를 묵살하거나 최소한 ‘항이(抗異)’의 기록으로 남겨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피지배에 다름없었던 이민족 왕조까지 곧바로 정사(正史)로 기록해 주류역사에 포함시켰다.

기원전 2070년경의 하나라에서 시작해 서기1911년 신해혁명까지 장장 4000여 년의 장구한 역사. 그 실체는 그야말로 ‘역사 만들기’였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일단 천자로 등극하면, 그것이 찬탈이건 참칭이건 하늘의 아들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고착화된 의식의 발현이었을지 모를 일이니 종법제는 피지배적 신민(臣民) 의식의 뿌리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할 것이다.

■영구적 복종과 충성 근원 ‘세경세록’

   
육관(六官) 체계를 기록한 ‘주관’.
그럼 수천 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도무지 거두어지지 않는 종법제는 당시 체제를 수호하는 관료조직에는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주공이 제정한 행정조직을 기록한 ‘주관(周官)’이라는 경전이 있다. 그에 따르면 주공은 모든 관직을 여섯으로 나누어, 재상에 해당하는 총재(塚宰)는 천관(天官)으로서 천자를 보좌하고, 지관(地官)인 사도(司徒)는 토지와 호적 및 지방 행정을 관리하며, 춘관(春官) 종백(宗伯)은 왕실 사무와 제사를 담당하고, 하관(夏官) 사마(司馬)는 군사를 담당하며, 추관(秋官) 사구(司寇)는 사법을 담당하고, 동관(冬官) 사공(司空)은 건축 및 기물 제조를 담당했다.

이들 여섯 관직을 육관(六官)이라 하며 휘하 관직은 경대부 및 사(士) 계급이 책임을 맡았으며, 그 직은 적장자가 계승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이들에게는 일정한 토지를 배정하여 그 수확으로 급료를 대신하게 하였으니, 이를 세습되는 관직 및 봉급이라는 뜻으로 ‘세경세록(世卿世祿)’이라 이른다. 이와 같이 전체 관료 조직은 천자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식이었고, 그들의 직은 봉록과 함께 세습됨으로써 영구적인 복종과 충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관’은 1500여 년이 지난 서기 10년 전후, 서한(西漢) 시대의 고문학자(古文學者) 유흠(劉歆)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져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 경전은 이후 정권 찬탈이나 신법(新法)의 실시로 인한 격변기에는 혁명의 근거로 내세워지기도 했으니, 관제(官制)의 기록을 넘은 중국 사상사의 한 정수(精髓)로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청동예기에 ‘명문’ 새겨 관직 수여·승전 치하 축하

- 영을 기록한 청동 제기인 ‘영이’
- 주나라 행정 조직 및 관제 기록
- 中 고대문명 중 최다 명문 극찬

‘주관’에 기록된 육관체계(六官體系) 외에, 1929년 하남성 낙양시 마파(馬坡)현에서 발견된 청동기 명문을 통해 주대의 관제를 살펴볼 수도 있다.
   
고대 중국의 천자가 관직을 수여하거나 승진을 치하하며 하사한 청동기 명문들(왼쪽), 명문을 세긴 청동 제기인 ‘영이’.
‘영을 기록한 제기(祭器)’라는 뜻에서 ‘영이(令彛)’로 명명된 34.1㎝ 높이의 이 청동기에는 모두 14행 187자의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삼사령(三事令)·경사료(卿事寮)·제윤(諸尹)·이군(里軍)·백공(百工)이 있고, 제후인 후·전(甸)·남 및 사방령(四方令)을 두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내복(內服)과 외복(外服)의 관제를 나타낸 것으로, 왕이 직접 통치하는 핵심 구역을 내복, 제후 등이 통치하는 변방을 외복으로 나누는 방식인데 이미 상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서주에 들어와서 더욱 정교하게 조직되었던 것이다.

또 경사료와 태사료는 서주의 양대 관서(官署)로서, 경사료는 정치·군사·법 등의 국가 사무는 물론이고 제후의 통치 사항까지 관장했다. 반면 태사료는 책명(冊命)·예의·천문역법·제사 등 왕을 직접 보좌하는 업무와 종묘의 일을 관장했다.
   
고대 악무도를 그린 한나라 대 화상석.
이처럼 ‘주관’과 ‘영이’의 기록이 일부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천자 1인으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보다 주목할 것은 명문이 담긴 청동기들이다. 갑골문을 시작으로 문자가 발전하자 관직의 수여, 승전의 치하 등 축하할 일이 있으면 청동예기를 하사하며 그 증명과 새겨야 할 뜻을 명문으로 남겼다. 그때 이미 죽간(竹簡) 등의 기록수단을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에도 멸실되지 않는 다양한 청동기 명문은 고대 문명 중에서 가장 풍성한 기록이 되어 중국 역사를 찬란하게 하니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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