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교과서를 보면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거나, '자진해서 매춘에 나섰다'는 식이라니 기가 안 차나."

　부산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김문숙 이사장의 말이다. 최근 유엔 구테헤스 사무총장의 '한일 위안부 지지합의' 논란은 결국 사무총장의 원론적 입장을 일본 측이 입맛에 맞게 해석하면서 일어난 일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김 이사장은 속을 끓였다. 그는 "일본 아베 총리가 전범국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만 그런가 했더니, 처음 유엔 사무총장이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나중에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했지만, 유엔 사무총장이 일본 편에 섰다고 보도되는 동안 유엔조차 위안부 인권 문제의 우방으로 여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부산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하 역사관)의 관장직도 맡고 있다. "이제 역사관을 운영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아흔을 넘긴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면서도 1990년 이래 30년 가까이 사재를 털어 역사관을 지켜왔다. 최근 도쿄에서 일본 '여성 전쟁평화박물관'이 주최한 '제1회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회의'(3월 31일~4월 1일) 때 김 이사장은 한국 대표 강연자 자격으로 초청됐다. 김 이사장은 중국, 필리핀, 대만 등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들 앞에서 "전쟁으로 향하고 있는 일본을 우려하며, 작으나마 부산의 역사관에서 전쟁과 식민지, 위안부의 비참함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며 역사관의 이미를 설명했다.

　박물관 회의 당시 회의장 밖에는 일본 우익단체가 몰려왔고, 확성기에 대고 '돌아가라'고 외치며 욕을 하기도 했다. 소식을 들은 일본 매체의 기자들도 회의장을 찾았다. 그들 중 젊은 기자들은 김 이사장에게 "전쟁 때 강간 사건은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왜 한국만 이를 문제삼으며 일본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모든 전쟁의 강간 사건은 비극이다. 하지만 일본 처럼 국가가 조직적으로 식민지 처녀들을 잡아다가 성노예 생활을 시킨 경우도, 그 과정에서 그토록 잔혹하게 위안부를 살해한 경우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 속에 숨은 일본의 뻔뻔함, 그리고 이를 수용한 2015년 12월 당시의 한국 정부를 생각할 때마다 치를 떤다. 특히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와 함게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이라는 문구를 볼 때는 더 그렇다. 김 이사장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물론 우리나라에 대한 36년 식민지의 학정에 대해서도 당연히 성의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그런데 재론의 여지를 막고, 사실상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조건까지 내걸며 던져주는 돈 몇푼을 우리 정부가 덥석 받아왔다"고 탄식했다.

　김 이사장은 이 같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그저 "아이들에게 옳은 역사를 가르칠 수 있게 하는,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임명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겠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대단히 고마운 말이지만 장관이 되기 전 위안부 문제에 호의적으로 언급한 이들은 많았다"며 다시 한 차례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만 같은 일본에 결코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김 이사장이 치중하고 있는 작업은 '관부재판'이라고도 불리는 시모노세키 재판의 기록을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하는 일이다. 김 이사장은 1990년대에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직접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일본을 오가는 재판을 벌인 끝에 일본군 강제 위안부 동원 사실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며 승소했다. 그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처음 사과했던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록물 지정은 난항을 겪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일본은 유네스코에 매년 막대한 회비를 내 발언권이 막강한 나라다. 이 기록물 등재 문제를 빌미삼아 회비로 유네스코를 압박하는 등 기록믈 등재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한숨지었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