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잔해 속 여자아이 구출

- 중세성당 등 문화유산 곳곳 파손
- 주민들 "종말 온 줄 알았다" 참담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지역을 강타한 강진은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여름 휴가객이 많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가장 큰 피해 지역인 라치오 주 리에티 현의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 레마르케 주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는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토마토와 매운 고추 소스로 만든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의 탄생지로도 유명한 아마트리체는 이번 주말 축제가 예정돼 있었다.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인 아쿠몰리도 여름철이면 휴가를 위해 찾는 사람들로 거주 인구가 2000명까지 늘어나는 곳이다. 이들 지역은 수도 로마에서 차로 1시간 반∼2시간 거리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실종자는 정확히 집계하지도 못하고 있다.

■필사의 구조…실종자 집계 못돼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아마트리체를 강타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 깔린 생존자를 구조대원들이 후송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한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는 지금까지 24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도 수백 명에 달한다.

영국 BBC방송,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진앙 근처에서 놀라 잠에서 깬 주민과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끔찍했다" "종말이 온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슬리퍼에 잠옷 차림으로 여전히 멍한 표정인 한 여성은 돌무더기와 먼지 사이에서 처참하게 파괴된 마을을 바라보며 "전쟁터 같다"고 말했다.

필사적인 구조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군대와 산악 구조대, 헌병대, 소방대, 적십자 직원, 자원봉사자는 물론 생존한 주민들까지 구조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탐지견과 불도저 등 중장비는 물론 맨손으로 잔해 더미를 파헤치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 아마트리체에서 구조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비안케티는 "불행하게도 우리가 꺼내는 90%는 시신"이라고 말했다. 레마르케 주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는 소방관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손으로 헤치고 부서진 돌과 앙상하게 드러난 철골 사이에 갇혀 있던 여자아이를 무사히 구해냈다. 현지 방송이 공개한 구조 영상을 보면 소방관들이 장갑만 낀 손으로 부러진 나무판과 부서진 돌, 유리, 흙먼지를 걷어내자 먼저 아이의 맨발이 드러났다. 아이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10세라는 보도와 8세라는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

■문화유산 무방비 파손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법률로 도시 현대화가 제한된 것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지진 진앙으로 상당수 건축물이 무너진 움브리아 주 노르차는 대표적인 기독교 성인인 성 베네딕토가 태어난 곳이다. 성 베네딕토 생가터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12세기 성당 건물이 파손됐다.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 조각이 가득한 성당 100여 곳이 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꼽히는 라치오 주 아마트리체는 이번 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15세기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 정면의 절반이 무너지면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장미 무늬 창이 사라졌다. 16세기 종탑에 걸린 시계는 지진 발생 시각인 3시36분에 그대로 멈춰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대저택 팔라초들의 뜰은 지진 희생자들의 영안실로 바뀌었다. 레마르케 주 페스카라 델 트론토의 유적 중심지에서는 무너져 내린 건물들 사이에 시계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유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