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야심 차게 마련 중인 환경보호 회칙 초안이 발표를 사흘 앞둔 15일(현지시간) 유출됐다.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기후변화로 빈곤층이 고통받고 있다며 긴급대응을 촉구하는 내용이 골자다. 가톨릭 교회가 교황이 발표하는 최고 권위의 교서인 회칙의 주제로 환경보호를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P통신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는 이날 교황의 환경보호 회칙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탈리아어로 된 초안에서 교황은 기후변화가 대부분 인간의 활동과 화석연료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빈곤층이 대기오염과 유독물질 폐기, 해수면 상승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 감소와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 해양 어종남획 등이 지구에 가져오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WP는 교황이 판례를 세우는 대법원 판결문처럼 논증했다고 평했다. 교황은 온난화에 자연적 요인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활동과는 무관하게 온난화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맹비난하고 지구를 해치는 인간의 행위를 죄와 동일시했다. 이어 교황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 개발과 화석연료 대체,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개발 등을 위한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유출된 초안에 대해 "최종본과 내용이 다를수 있다"면서 "예정대로 회칙은 18일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교황이 발표하는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와 신자에게 보내는 공식 사목교서다. WP는 프란치스코처럼 유명한 교황이 마련한 환경보호 회칙이 정치인과 정책입안자 등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교황은 9월 미국을 방문해 의회와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중국과 함께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에서는 재계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교황이 신학과 무관한 기후변화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도 예정돼 있다. 교토의정서에 이어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새 기후체제가 처음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이 같은 회칙이 공개되자 미국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우파 유력 인사들은 교황을 향해 '세속에 개입 말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CNN 등에 따르면 공화당의 상원 환경 공공업무위원장인 제임스 인호페(오클라호마) 의원은 기후 관련 콘퍼런스에서 "교황은 그의 일을 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