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들판에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흙을 담은 검은 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사고 지점 2㎞ 접근하니
- 방사선량 부산 60배 치솟아

- 폐기물 등 담은 비닐 방치
- 20개 마을 산더미 이뤄

- 피난 중 숨진 사람 1793명
- 공공시설 복구 67% 그쳐

"삐삐삐삐…."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모니터에는 5.95μ㏜(마이크로시버트)라는 숫자가 찍혔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와 2㎞ 떨어진 거리에서 기록한 방사선량이다. 0.1μ㏜ 전후인 부산이나 중국 베이징의 생활 방사선량보다 60배 가까이 높은 수치. 이곳에 2시간 동안 머물며 노출된 방사선량은 이론상 흉부 엑스레이 1회 촬영치(10μ㏜ 기준)와 맞먹는다. 지난 12~14일 후쿠시마현을 방문한 부산시의회 원전특별위원회 소속의 김쌍우(기장2) 의원은 "시속 60㎞ 속도로 달리는 버스 내부에서 측정한 방사선량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 '그날'의 악몽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방사능 공포는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령마을과 공포의 비닐백

후쿠시마 원전과 2㎞ 떨어진 버스 내부에서 측정한 공간 방사선량이 5.20μ㏜ 를 나타내고 있는 모습.

지난 13일 후쿠시마현청이 있는 후쿠시마시에서 버스를 타고 동일본 대지진 피해 현장으로 향했다. 1시간 넘게 들판과 산길을 달려 원전과 20㎞ 떨어진 오다카(小高) 마을에 도착했다. 쓰나미를 피해 주민이 모두 떠난 주택가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제염·제선 작업을 하는 인부들만 이방인들의 방문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지난 1월까지 투입된 방사선 업무 종사자는 4만여 명. 이 중 발암 위험이 큰 것으로 일본 당국이 분류하는 연간 피폭량 100ｍ㏜(1ｍ㏜=1000μ㏜)가 넘는 종사자는 170명이 넘는다. 하지만 위험을 알고도 복구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국도 6호선을 탔다. 아베 정부가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 3월 서둘러 개통한 도로다. 원전과의 거리는 직선으로 2~4㎞. 도로 옆에 설치된 방사선 측정기는 시간당 2~6μ㏜를 보였다. 엑스레이로 구강 검사를 할 때 나오는 수치다. 원전과 5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시나 고리야마시의 공간 방사선 역시 1μ㏜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넘쳐나는 방사성 오염토와 폐기물 처리다. 원전 반경 20㎞ 안에 있는 20개 마을의 들판에는 오염토나 방사성 폐기물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처리할 곳이 없어 내버려 둔 것이다. 후쿠시마현에서만 지금까지 거둬들인 흙이 2040만t에 달한다. 원전특위 신정철 의원은 "고리원자력본부에도 엄청난 양의 사용후핵연료봉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쌓여 있다. 고리1호기 폐로 과정에서 더 많은 방사성 폐기물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약없는 피난민의 귀향

'죽음의 공포'도 여전하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직접 사망자는 1만8500여 명. 그러나 피난생활을 하다가 숨진 2차 사망자도 늘고 있다. 후쿠시마현만 해도 2차 사망자가 1793명으로 직접 사망자 1607명을 이미 넘어섰다. 피난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와 면역력 약화가 주원인으로 추정된다. 2011년 3월 202만4401명이던 후쿠시마현 인구도 지난해 12월 현재 193만6008명으로 8만8393명이나 감소했다.

피난민도 아직 22만 명에 달한다. 원전과 12㎞ 떨어진 가와우치 마을에서 대피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시다 아쯔시 자치회장은 "우리 마을주민 3000명 중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550명뿐"이라면서 "아침부터 상실감에 빠져 술을 먹는 사람도 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외로움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제선 작업에 대해서도 불신을 드러냈다. "원전이 폭발하면서 138만 bq(베크렐·1bq= 1초에 한 번 핵분열 하는 양)이 쏟아졌다고 한다. 집은 제선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나무나 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노인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후쿠시마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9평의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대부분 무직 또는 일용직이다. 고향에서 들판을 가꾸거나 바다를 터전으로 살았기 때문에 새 직업을 찾기가 어렵다. 가설주택 사용기간도 내년 3월로 끝난다. 피난민들이 귀향하지 않자 정부가 사용기간을 지난 3월에서 1년 더 연장했다.

일본 정부가 대지진 피해 복구비로 쏟아부은 예산은 약 200조 원. 그러나 후쿠시마현만 해도 공공시설의 67%만 복구된 상태다. 전파 또는 반파된 9만5000가구의 민간주택 복구는 요원하다.

후쿠시마=글·사진 이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