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특별성명을 통해 53년 만의 대 쿠바 봉쇄정책 포기를 비롯한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방침을 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 제3국 캐나다서 대면 접촉

- 21세기 국제외교 최대 사건

- 세계 역학관계·경제 큰 파장

- 남미 각국·유엔 등 환영 일색

- 김정은 소외감, 변화 가능성

1961년 1월 1일 국교 단절을 선언한 이후 53년 만에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에 나선 것은 국제외교사 분야의 21세기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북·중·남미의 외교와 경제 뿐 아니라 전 세계적 역학관계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언급 처럼 새로운 길,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 세계, 특히 남미 국가들이 일제히 환영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양국간의 국교 정상화는 그 파급력과 상징성, 실패했을 경우의 부담감 등으로 인해 매우 은밀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향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적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중요 역할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면 접촉은 제3국인 캐나다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캐나다 CBC방송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협상을 도와준 캐나다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처음 자국에서 양국 간 대면 회담을 주선한 이래 지난달까지 일련의 회담 진행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별도의 축하 성명을 내고 "캐나다가 미국과 쿠바의 고위 관리들이 회담을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양국에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양국의 국교 정상화 협상 개시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냈으며, 올여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대화했다고 알려졌다. 바티칸도 이날 성명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0월 미국과 쿠바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미묘한 양국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주선한 사실을 알렸다.

■반기문·각국 정상 환영 일색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은 양국의 우호 관계가 증진되도록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 사무총장은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에게 '관계 정상화를 향한 중요한 진전을 이뤄낸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또 올해 유엔 총회가 미국의 대(對) 쿠바 무역제재를 해제하고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남미 국가들도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은 이날 아르헨티나 파라나 시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외교관계 정상화에 나선 사실을 환영한다고밝혔다.

메르코수르 의장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양국이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절차를 시작한 것을 메르코수르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날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5개 회원국과 볼리비아 정상이 참석했다. 남미 12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남미국가연합도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 선언을 환영했다. 에르네스토 삼페르 사무총장은 내년 4월 파나마에서 열리는 미주기구 정상회의에 쿠바가 참여할 것이고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북한 뿐?

국제 외교가의 시선이 '평양'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대통령 취임 이전 '적과의 대화'를 약속하면서 거론한 대상이 이란과 쿠바, 북한이기 때문이다. 이란과 쿠바는 '절반쯤' 약속이 실현되는 듯한 모양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의 다음 목표점은 북한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쿠바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앞으로의 상황 전개와 북한의 태도 변화를 봐가며 관계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미-쿠바 국교정상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김정은 정권이 느낄 소외감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직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으며 북한 김정은 정권이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태도변화를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북한의 태도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