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로 임금을 깎는 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금피크제를 적용 중인 전국 사업체가 판결 여파를 받을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 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1991년 이 연구원에 입사해 2014년 명예퇴직했다. 이곳은 2009년 1월 기준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A 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그는 임금피크제 탓에 직급과 역량 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달라고 소를 제기했다.

대법원. 국제신문DB

쟁점은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으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를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 제고를 위해 도입된 것으로 그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덧붙여 대법원은 고용자연령법이 규정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는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때에도 그 방법이나 정도가 적정하지 않은 때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삭감의 합리성은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와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처음으로 임금피크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전국 사업체는 ‘합리적인 이유’ 만들기에 분주하다. 55세부터 연 10% 임금 삭감을 시행 중인 부산지역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현재는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에 별도의 직무 조정은 따로 없는 편이나 이번 판결로 인해 직무 조정, 별도 부서 배치 등과 같은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노동계는 판결을 환영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김재남 부산본부장은 “임금피크제를 완전히 위법으로 보지 않고 여지를 남겨둔 점은 아쉽다”며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는데 제도 시행 이후 전혀 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 임금만 삭감해 차별이 발생한 만큼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